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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ul 02. 2024

공과 사를 구별할 필요가 있을 듯

31.

'케이크와 독서' 클럽에 자극을 받아서 나도 내내 생각하던 독서 모임을 결성했다. 이름하여 '커피와 루이스', 아는 친구와 그 친구의 지인들로 이루어진 독서 모임이다. C. S. 루이스의 영성과 지성에 크게 감동을 받았던 터라 독서 모임의 이름을 '커피와 루이스'로 지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루이스가 쓴 책들을 찬찬히 읽으며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이다. ☞ 본 책, 40~41쪽

'에릭슨의 발달 단계로 읽는 삶의 지혜'라는 부제가 붙은 탓에 처음부터 이 책에 강렬하게 이끌렸습니다. 공공도서관에 갔다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빌려왔습니다. 그래서인지 꽤 흥미롭게 읽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크게 요란하지도 않고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듯 진행되는 글이 돋보였습니다. 저 같은 발달심리학에는 문외한인 사람들이 읽기에도 어렵지 않아 좋았습니다. 특히 저자의 일상 속에서 한 꼭지씩 길어 올린 듯한 글들은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아직 초반부이긴 하나 흥미롭게 읽어 내려가던 중 문득 책장을 집고 있던 손을 놔버렸습니다. 왜 그렇게 거슬렸던지요? 아무리 종교가 개인의 자유라고 해도 이런 공적인 장에까지 끌고 들어오는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수필집을 집필하는 것이 어떻게 공적인 장이냐고, 그건 엄연히 사적인 창작 행위가 아니냐고 말입니다. 분명 수필을 쓰는 건 사적인 행위임에 틀림이 없지만, 이미 책으로 출간되어 나와 독자들에게 읽힐 때는 더는 사적인 영역에서 머물 수 없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의 영성과 지성에 크게 감동을 받았던 터라 독서 모임의 이름을 '커피와 루이스'로 지었다.


당연히 '영성'이라는 이 단어에 기분이 거슬렸던 것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영성이라는 말은 신령스러운 품성이나 성질을 뜻한다고는 하나, 불순물이라고는 조금도 섞이지 않은 비물질적인 것 즉 본질 및 활동에 있어서 물질에 의존하지 않는 정신적인 것의 속성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현대인들에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기독교 문화의 상징적인 낱말 중의 하나로 간주될 정도입니다. 공적인 공간에서 이렇게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저자의 태도에 지금껏 호감으로 읽어 오던 책을 덮어버리고 마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100세를 훌쩍 넘어 지금껏 생존한 김형석 박사의 저서에서도 그런 기운은 넘쳐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좋다고 해서 막상 읽어보면 그 좋은 뜻을 너무도 농후한 기독교적인 색채로 인해 갉아먹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정신분석에로의 초대』를 쓴 이무석 박사의 저서 역시 그러했습니다. 제목이 암시하듯 난해한 정신부석에로의 초대까지는 성공한 듯했지만, 독자를 전도하려는 듯한 저자의 태도엔 불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한때 신학대학교에 진학하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종교가 삶의 전부이자 생명줄이고, 그래서 그들에게는 결코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 어떤 일에서든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공적인 장인지는 모르겠지만,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그런 모습들이 더욱 불쾌감을 조장하는 태도라는 것을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읽고 싶은 것은 순수한 수필집이지 간증서를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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