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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ul 03. 2024

나른한 점심시간

나른한 점심시간입니다. 식판에 밥과 반찬을 받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대체로 정신없는 시간이긴 합니다만, 이러는 것도 오랜 기간 적응이 되다 보니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를 합니다. 물론 혼자 먹을 때가 가장 편한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양치질을 한 뒤에 잠시 동학년 연구실에 왔습니다. 몇 명의 선생님들이 쉬고 있습니다. 서로가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이 시간만큼은 뭘 하든 서로 터치를 하진 않습니다. 전 컴퓨터 앞에 앉아 또 몇 글자를 처넣어 봅니다. 짬을 이용한 글쓰기의 실천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대단한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제게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도 없습니다. 그냥 지금 저의 작은 생각을 옮겨보는 것뿐입니다.


출근한 걸로 따지면 겨우 4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뒤로는 7시간 정도 지난 셈입니다. 오늘은 그저 그 많은 일상 중의 하루입니다. 특별한 행사가 잡혀 있는 날도 아닙니다. 사실 일이 일어나 봤자 뭘 그리 유의미한 게 있겠습니까? 지금처럼 하루 일과의 절반을 소화하고, 점심까지 먹고 나서 쉬고 있으면 별일 없는 것이겠지요.


왼쪽으로 펼쳐진 창문밖의 풍경을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어김없이 태양은 운동장 한가운데를 비추고 있습니다. 이 더위에도 온몸으로 햇빛을 받으며 수업을 하고 있는 체육 전담선생님을 보며 저기 서 있는 선생님은 정말 덥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선크림은 제대로 바르고 나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리 더워도 체육은 꼭 해야 하는 수업이니 저 뙤약볕에도 저렇게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선생님이 측은하기까지 합니다.


여전히 하늘의 구름은 슬로비디오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방금 전에 확인한 구름의 자리가 몇 분 후 쳐다봐도 내내 그 자리인 듯합니다. 나른한 점심시간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말이라는 건, 저 구름을 보니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어제오늘 비를 맞은 산의 나무들은 말끔하게 단장한 채 서 있습니다. 입구에 늘어선 철책들은 햇빛을 받아 반짝입니다.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유리창에 햇살이 튕겨져 나와 산산이 부서집니다. 누군가는 볼일을 보기 위해 어딘가로 바삐 차를 몰고 가고, 저는 이렇게 연구실 벽면 쪽에 설치된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습니다.


실내에서만 있어서 그러는 것일까요? 마음이 조금은 갑갑합니다. 탁 트인 어떤 공간을 찾아가서 숨이라도 쉬어보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땡볕인 밖으로 나가볼 엄두는 내지 못합니다.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지극히 평화로운 오늘 한낮도 또 이렇게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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