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바삐 걸음을 옮기다 오른쪽 시선을 강렬히 잡아 이끄는 어떤 것이 느껴졌습니다. 꽃이었습니다. 꽃이 뭐가 그리 새삼스럽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농담을 약간 보태면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못 본 꽃이었습니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내려오며 보았네
글자 한 자 한 자가 정확하단 보장은 없지만, 이런 내용으로 된 시인 고은 씨의 짧은 시 한 편이 생각났습니다. 그렇다면 제 식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될 것 같습니다.
출근할 때 못 본 그 꽃
퇴근길에 보았네
꽃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적어도 작년에도 본 그 꽃이었을 텐데, 올해 그리고 지금 제 눈에 보인 꽃은 이전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차원의 꽃이었습니다.
문득 저 꽃과 대화를 시도해 봅니다.
"와, 1년 만이네. 언제 이렇게 예쁘게 피었어?"
"무슨 소리하는 거야? 한 달 전에도 난 여기 있었거든."
"설마 그럴 리가? 그러면 내가 왜 그동안 널 못 봤지?"
"눈만 뜨고 다니면 뭐 해? 정작 중요한 건 못 보면서."
꽃은 제게 말합니다. 지금 제가 보고 있는 그 자리에서 늘 사람들 눈에 띄길 기다렸다고, 그동안 어딘가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던 게 아니라 우리가 볼 마음이 없어서 못 본 것이라고 말입니다.
자연의 겸허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리 작은 일을 하건, 어떤 성취를 이루건 간에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떠벌리는 일이 없습니다. '나, 여기 피었으니 좀 봐주세요'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별 것도 아닌 일을 해놓고 갖은 말로 허세로 포장해 가며 요란하게 광고하는 우리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냥 소리 소문 없이 늘 있었던 그 자리에 피어날 뿐입니다.
며칠 저 녀석을 오며 가며 볼 것입니다. 그러다 녀석에 대한 관심이나 흥미가 떨어지게 되면 더는 보러 가지 않을 겁니다. 한참 후 다시 그 자리에 가 보면 늘 그랬듯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저 자리를 지나가다 저는 또 오늘처럼 화들짝 놀라고 말 것입니다.
자연의 겸허함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배우고 싶습니다. 괜스레 꽃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돌아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