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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ul 07. 2024

시 같은 수필

32.

불출 씨가 10년 만에 회사에서 승진했습니다.
막상 승진을 하니 안 보이던 것이 보입니다.
우선 만나는 사람의 폭도 달라집니다.
듣는 정보의 질과 양도 훨씬 달라집니다.
그에 따라 지식 수준도 한 차원 높아집니다.
결국 사물을 판단하는 능력도 향상됩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실감납니다. ☞ 본 잭 144쪽

어제 이 책을 읽으면서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표현하면 딱 맞지 않을까요? 마음에 맞는 누군가를 만나 술을 한 잔 기울이면서 마냥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어려운 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굳이 그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눈에 들어오는 대로 쏙쏙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이런 형식으로 쓰인 수필은 처음이었습니다. '시'라는 형식의 글도 아닌데도 마치 시를 쓰듯 모든 문장을 줄을 바꿔 써놓았습니다. 어찌 보면 그냥 단순하게 얼마 되지 않는 글로 양을 채우려고 잔머리를 쓴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계속 읽다 보면 과연 저자가 그런 의도로 이렇게 글을 썼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불출 씨가 10년 만에 회사에서 승진했습니다. 막상 승진을 하니 안 보이던 것이 보입니다. 우선 만나는 사람의 폭도 달라집니다. 듣는 정보의 질과 양도 훨씬 달라집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이렇게 쓰였어야 할 글인 것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보시다시피 각 문장을 모두 줄을 바꿔서 적어 놓으니 우선은 문자에 대한 피로감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그러면 우선은 얼마 안 되는 양이니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막상 읽어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저 많은 여백들이 책을 읽고 있는 저에게 많은 생각의 틈과 시간을 허락하는 듯했습니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으나, 족히 100여 편은 넘어 보이는 짤막한 이야기들로 책은 구성되어 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든 읽을 수 있는 꽤 훌륭한 책이었습니다. 스토리라는 것이 있어서 흐름이 끊어질까 봐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책입니다. 한 편을 읽고 다른 일을 하다 그다음 편을 읽어도 되고, 이건 어디까지나 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겠지만 어떤 편은 너무 공감이 가는 나머지 다시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그러했습니다. 아직 또 다른 사람을 만들 만한 자리에 올라본 적은 없으나,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 저로서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이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의 심리와 변화'를 이렇게 명쾌하게 표현해 놓은 책을 본 적이 없습니다. 자질구레한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덤덤하게 써내려 갈 뿐이었습니다. 마치 저자는 그러기를 작정한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에게 어떤 거창한 얘기 따위는 기대하지 말고, 그냥 듣고 싶으면 듣고 아니면 듣지 않아도 좋다는 듯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저자에 대한 흥미도가 끝없이 상승하고 있는 중입니다. 최근 2~3년 동안 읽었던 책 중에서는 단연 최고의 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 읽고 나니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자가 말한, 버리고 있다는 그 어제가 저에게는 무슨 의미일까, 하고 말입니다.


사진 출처: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책 내용 일부를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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