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Jul 16. 2024

소설 쓰기, 일단은 저질러 놓고 봅시다.

#1.

정확하게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안 납니다제가 처음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시기가 말입니다그때도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으로 타이핑했으니 족히 25년은 더 된 것 같긴 합니다만약 저의 처녀작이 지금도 남아 있다면 저장된 날짜를 보고 정확한 시일을 알 수 있겠지만아쉽게도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과연 몇 편을 썼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이미 완결된 작품(?)도 있지만미완성인 채 고스란히 컴퓨터 하드디스크 안에 잠자고 있는 녀석들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제가 여기에서 작품이란 말 뒤에 굳이 물음표를 단 이유는 저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작품이지만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허섭쓰레기일뿐이기 때문입니다어쨌거나 대략 추산해 보면 단편 20중편 8그리고 장편 2편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어차피 등단한 작가가 아닌 이상 몇 편을 썼는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약간의 시건방을 떨어본다면 소설 쓰기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제가 쓴 그간의 소설들이작품성이 있건 없건 간에 혹은 재미가 있건 없건 간에 소설이라는 형태로 글을 써본 경험에 기대어 얘기하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소설을 처음 쓰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뇌는 거의 펄펄 끓는 가마솥과 다름없는 상황이 됩니다예상외의 등장인물이 불쑥 떠오르는가 하면  작품 속에 포함시키고 싶은 에피소드들이 둥둥 떠다닙니다솔직히 떠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모래밭에 흩어져 있는 철가루처럼 어디 있는지 모를 정도로 산발적으로 널려 있습니다당연히 소설의 초고를 쓰려면 이것들을 하나하나 주워 모아야 합니다그런데 말이 쉽지 이 작업이 사실 만만치 않습니다.

     

더러는 잊어버리는 것들도 있고어떤 것은 구체적인 장면이 되어 수면 위로 떠오를 때쯤 원형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리기도 합니다이때 행여 잊어버리는 것들이 있다고 해도 너무 연연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이미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놔두는 것이 좋습니다꽤 괜찮았다고 판단되었던 표현들을 잊어버렸다고 해서 이후에 더 나은 표현이 찾아오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가령 예를 들어, 저는 '언니의 외출'이라는 제 단편소설을 처음 구상하던 단계에서 미처 정리되지 못한 낱낱의 파편들이 제 머릿속을 떠다니는 경험을 했습니다. 어린 동생이 있고, 언니가 있습니다. 불면증이 있는 건 아니지만 동생은 늘 잠들 시간에 1~2시간씩 밖을 나갔다 오는 언니 때문에 본의 아니게 잠을 설치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언니의 온몸에서는 담배 냄새가 납니다.

만약 여기에서 언니가 담배를 피우고 오느라 밤마다 나갔다가 온다고 하면 그다지 소설적인 상황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언니가 피워도 무방할 테지만, 언니의 몸에서 나는 담배 냄새는 아무래도 그 주인이 따로 있는 것이 보다 더 갈등을 유발하기에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누가 그 담배를 피웠는지에 대한 나름의 추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은 딸 둘을 데리고 사는 망나니 같은 아버지가 피운 것이 되어야 가장 소설적인 스토리가 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이 과정에서 놓친 생각들이 많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그렇게 생각하려 했습니다. 정말 스토리 설정에 필요한 사항이라면 잊어버릴 리가 없다고 말입니다. 만약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지금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 자신의 힘으로 붙들 수 있는 표현들에만 관심을 쏟는 것이 좋습니다소설 쓰기는 꽤 생각보다 긴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인 관계로 초반에 너무 무리하게 힘을 빼서 좋을 것은 없습니다그건 어쩌면 작품의 분량과는 별 관계가 없는 건지도 모릅니다오히려 중편이나 장편보다 단편을 쓸 때 더 농도 깊은 집중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굳이 우리 자신에게서 떠나려는 표현들은 과감히 손을 놓아버리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이젠 작품의 수준을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맞습니다처음 소설을 완성한 뒤 읽어보면 그건 수준이라는 말을 감히 갖다 붙일 수 없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습니다왜 안 그렇겠습니까어지간해서는즉 공식적으로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제대로 된 소설 쓰기 강좌를 들어본 경험이 없을 확률이 높습니다마찬가지로 별도로 소설 쓰기에 관해 사사를 받았을 리도 없습니다그런 사람에게서 어떻게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요?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고가 그 어떤 사람이 읽어도 찬사를 받을 정도라면 그는 아마도 천부적인 소설가가 될 자질을 타고 난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 아직도 꽤 오래전어떤 작품을 탈고한 후 뿌듯한 마음으로 아내에게 보여줬을 때의 그 반응을 잊을 수 없습니다제 기억이 맞다면 제 생애의 두 번째 작품이었을 겁니다아내는 분명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뭐야? 이것도 글이라고 썼어? 어디 가서 함부로 글 쓴다고 하지 마. 그리고 가능하면 일찌감치 때려치워.

     

가장 지지를 받고 싶은 가족에게서 끌어낸 반응이 그 정도였으니 초기 작품이 얼마나 엉성했는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그나마 얼마 전 아들이 저에게 제가 써 놓았던 소설 중의 몇 편 정도는 생각보다도 가독성이 괜찮다는 말을 한 적이 있긴 합니다그동안 소설 쓴답시고 고군분투한 나름의 보람과 어느 정도의 발전이 있었다는 뜻일 테니까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제 소설이 아직 멀고도 멀었다는 것을 말입니다작품성을 논할 주제는 아예 못 되고그나마 재미라는 측면에서도 뚜렷하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없습니다그저 제가 읽었을 때 세상의 그 어떤 작품보다도 재미있고 잘 썼다고 믿고 싶을 뿐인 것입니다최소한 그 정도의 자부심(?)이라도 없다면 제가 이 길고 지난한 작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쓰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말을 감히 해 보려 합니다만약 주변의 냉랭한 시선과 비아냥에 굳건히 버틸 자신이 있다면, 그 어떤 반응에도 꿋꿋하게 그리고 의연하게 대처할 자신이 있다면, 또 소설을 써 나갈 때마다 자신이 바보 같다는 게 증명이 된다고 해도 이런 생각에서 초탈할 수 있다면, 소설은 그 어느 누구라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혹시 소설 쓰기를 마음먹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일단은 한 번 저질러 놓고 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희미한 그 어떤 형태로라도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써 보라는 겁니다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소설이라는 넓고 넓은 바다로 나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생각보다도 소설 쓰기라는 이 작업이 꽤 할 만합니다. 기쁨, 즐거움, 그리고 보람과 함께 하는 시간을 누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