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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ul 24. 2024

이 평화로운 곳

#13.

매일 아침 왜관역에 내려서 제가 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오는 길입니다. 늘 다니는 길이 뭘 그리 새로울 게 있을까요? 다만 이렇게 한 장의 사진으로 남겨 두고 싶은 마음이 든 건 일상을 조금은 더 특별하게 기억하고 싶은 바람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우리네 삶이란 게 그런 것 아닐까요? 타인에겐 전혀 의미 없는 것이 제게 의미를 갖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삶의 한 단면인 법입니다.


정확한 거리감이 없어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침에 기차를 타고 왜관역에 내리면 제가 사진을 찍은 지점인 왜관북부버스터미널까지 직선거리로 대략 200미터쯤 됩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큰길로 오는 방법이 있고, 사진엔 안 나와 있지만 왼쪽으로 한 블록 뒤에 있는 골목길로 오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 대로변이지 사실상 편도 1차선뿐이라 협소하기 짝이 없는 곳입니다.


어쨌건 간에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으나 정면의 맨 끝 지점의 왼쪽 편에 왜관역이 있습니다. 거기서 100미터쯤 더 가면  왜관남부시외버스터미널이 나옵니다. 2년 전 임지를 이곳으로 옮겼을 때 저는 이곳의 지명이 왜 '왜관'인지 궁금했습니다. 물론 왜관이라는 지명의 '왜'는 일본인을 뜻합니다.


칠곡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행정구역 코너에 있는 왜관읍 항목에 보니, 조선초 태종 17년인 1417년, 관호 2리에 왜관이 설치되었다고 하네요. 이후 1904년 일제에 의해 경부선 철길이 부설되면서 가까운 현이었던 지금의 왜관역 자리에 기차역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원래의 왜관이었던 관호 2리를 '구 왜관'이라 부르게 되었고, 지금의 왜관은 왜관역의 이름을 따서 '왜관'이라 하면서 신시가지로 형성되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정작 이곳에 와 보면 '신시가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지명이 왜관읍이란 것만 봐도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겁니다. 아마 이곳도 과거의 어느 때는 대거 발전의 바람이 불었을 겁니다. 그러다 마치 모든 변화가 일순간에 멈추기라도 한 듯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은 죄다 2~30년 전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낙후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차를 타고 국도로 가면 으레 마주치게 되는 소규모의 읍,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이 바로 이 왜관입니다.


흔히 말하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짙게 남아 있는 제 성격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과거에 대한 향수로 인해 그 언 과거 어디쯤인가에 제가 머물러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좁아터지고 별 볼일 없는 자그마한 동네가 매일 아침 제 마음을 사로잡곤 합니다.

'그래, 사람은 이런 곳에서 살아야 돼.'


10년 후쯤인 어느 날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ㅈ발전이 덜 된 곳, 아니 더는 변화 없이 멈춰 선 이곳 왜관역이 그래서 제게는 더 정겨운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진 출처: 글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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