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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ul 30. 2024

남에 대한 이야기

35.

오늘도 누구의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돌아오는 길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다. ☞ 본 책, 7쪽

우리나라에만 있는 속담인지는 모르겠지만 들을 때마다 무릎을 치게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표현입니다. 생면부지의 남도 아니고, 사촌이라면 그래도 가장 가까운 사람 중의 한 사람일 텐데, 그런 사촌이 잘 되는 것조차 배가 아프고 시기심이 일어나는 게 어쩌면 사람의 심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어쩌면 부끄러운 단면일 수 있으나 우리의 민족성 중의 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전 아마도 이쪽이 더 타당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할 때, 방점은 사촌에 찍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사촌이라는 것은 아무리 가까워도 결국은 '남'인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겠습니다. 결국은 '나'가 아닌 다른 나머지 사람들 모두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속담까지 갈 것도 없이 남 잘 되는 꼴은 못 본다,라는 표현도 있는 걸 보면 다른 사람의 언행이 우리에게 꽤 깊은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긴 합니다.


원래,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기쁨을 나누면 내 배가 아프고 슬픔을 나누면 나는 즐거운 게 인생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심보로 살아가는 우리들이라서 그런지 삼삼오오 모여들면 타인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됩니다. 여기에서의 타인이란 대화에 참가하고 있지 않은 타인, 즉 그 자리에 없는 타인을 말합니다. 따지고 보면 그 타인은 단지 그 자리에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몇 번이나 도마에 오르내려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무엇을 잘한다는 혹은 잘했다는 얘기는 한 번쯤 나와도 그뿐이지 더 이상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아, 그러냐, 하며 넘어가고 말지 몇 번이나 거듭해서 이야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재미가 없다는 것도 문제겠지만, 결국 그 문제는 타인이 잘 되는 것으로 인해 이야기하는 당사자들의 배가 아프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자리에서 수많은 대화를 나눠본 사람들은 압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즉 험담을 나눌 때가 가장 재미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린 의도치 않게 이런 순간이 올 때마다 입에 침을 튀겨가며 얘기에 빠져듭니다. 마치 제가 알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은 모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제 순서가 오면 열변을 토하곤 합니다. 그 사람이 우리가 나누는 대화로 인해 상처를 받건 말건 간에 그건 조금도 개의치 않습니다.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서 누군가 명이 안줏거리가 되어 굳이 듣지 않아도 말을 호되게 들어야 합니다. 대체로 그의 귀에 들어갈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지만, 희한하게도 실컷 얘기하고 나면 당사자에게도 내용이 전달이 됩니다. 전달한 사람이 했던 말은 빼고 말입니다.


그렇게 실컷 얘기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어느 날 그런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겁니다. 아까 그 얘기는 왜 했을까, 하며 후회하는 그 심정을 말입니다. 본 책에서 시인은, 아무도 우릴 보지 않아도 나무는 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왕 말난 김에 속담을 빌자면 이때의 나무는 새가 되고 쥐가 되는 것이겠습니다. 타인의 흉을 신나게 보던 나를 누군가가 지금 당장은 비난하지 않지만, 하필 그때에 멀뚱히 선 나무 한 그루가 저를 쳐다보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제가 나무 앞에 있는 것이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 되어 스스로 아무런 말도 없는 나무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마는 것입니다. 마치 '너 조금 전에 누구누구 그렇게 신나게 욕하더니 그래, 기분은 좀 좋았니?'라며 나무가 저에게 힐난하는 듯합니다.


모르겠습니다. 시인이, 혹은 소설가가 글만 잘 쓰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하기도 하고, 올바른 시인 혹은 소설가가 되려면 그의 작품과 일상생활에서의 실제 모습이 일치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의 그의 행적에 대해 실망한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어쨌건 간에 저는 그의 글만은 좋아합니다. 본 책은 아주 짧은 시들로 이루어진 시집입니다. 무슨 부처님의 선문답 같이도 다가오고, 대부분의 시들은 그 길이에 비해 아주 강렬한 뒷맛을 전해주곤 합니다. 아마도 이럴 때에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이지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었던 처지에서 읽으면 읽을수록 등골이 서늘해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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