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옆모습과 뒷모습
라라크루, '금요일의 문장공부' 2024.08.30.
인근 교육지원청의 학교에서 스쿨버스 사망 사고가 일어났다. 사실 엄밀하게 따지면 김 선생이나 김 선생이 속한 학교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일이 일어난 사실만 인지하고, 같은 사고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노력만 하면 될 뿐인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느닷없이 교장이 긴급 교직원 회의를 소집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시청각실로 몰려들었다. 몇몇은 또 어떤 꿍꿍이를 꾸미고 있나 싶은 눈초리를 하며 태산 같이 걱정했다. 워낙 밑도 끝도 없이 일을 꾸미고 그 때문에 학교 선생들을 고생시키는 데 정평이 난 교장이었다. 관내의 32개 초등학교 교장들 중 3대 악마 교장으로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큰일이 아니기를 바랐다. 터무니없는 욕심에 자신의 귀한 열정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처음엔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스쿨버스 사망 사고와 관련하여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하라는 얘기를 꺼냈다. 이 정도의 이야기는 교사라면 누구라도 딴지를 걸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서론이 생각보다도 길었다. 교장의 스타일이라는 걸 사람들이 모를 리 없었다. 듣는 척하면서 그저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A4 용지 한 장이 각 선생들에게 배부되었다. 늘 그랬듯 교무부장이 허둥대며 그 많은 선생들에게 일일이 배부하고 있었다. 종이를 받아 든 선생들은 무슨 의미에서 이런 종이를 들이미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날짜별로 스쿨버스 동승 지도교사를 배정한 표였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기로 유명한 교장이 직접 만든 양식이라고 했다. 김 선생은, 교장이 얼마나 급했으면 이런 일을 몸소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냥 예사로운 표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스쿨버스에서 사망한 아이는 2학년 아이라고 했다. 하교 후 집 근처에서 스쿨버스가 정차했을 때 버스 뒤쪽에서 무작정 아이는 길 건너편으로 튀어 나갔는데, 미처 못 본 마주 오던 차량의 운전자가 아이를 치어 사망하게 한 일이었다. 장기간의 조사 끝에 아이의 죽음에 대한 책임 소재가 가려졌다. 가해 운전자 30%, 학교장 40%, 그리고 스쿨버스 운전기사 30%, 아이의 유족에게 지급될 보상금도 같은 비율로 나눠 지급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사람들은 가해 운전보다 학교장의 책임이 더 크게 나온 것에 대해 의아해했다. 들리는 후문에 의하면, 가해 운전자의 책임 비율이 적은 이유는 제한 속도를 준수한 것은 물론 후속 조치가 완벽했기 때문이고, 학교장은 스쿨버스 운전기사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 실시가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선생은 본교의 선생들이 동승 지도교사로 탑승했을 때 만약 같은 사고가 일어난다면 책임 소재가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가해 운전자 30%, 스쿨버스 운전기사 30%, 동승 탑승 교사 30%, 마지막으로 학교장 10%라는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교장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안 그러면 직접 저렇게 표까지 만들어 가며 선생들에게 배부할 이유가 없을 터였다. 김 선생은 질문이 있다며 손을 들었다.
“교장선생님, 취지는 잘 알겠는데 그렇다면 스쿨버스 안전지도 동승 인력을 정식으로 공고를 내서 채용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김 선생님, 굳이 뭐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버스에 타는 아이들이 모두 본교의 아이들이니 선생님들이 직접 지도하시면 아이들도 좋지 않을까요? 그래 봤자 두 달에 한 번꼴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여긴 큰 학교니까요. 물론 지도하신 것에 대해서는 시간외수당을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이 표를 바탕으로 다음 회의 시간까지 각자의 스케줄을 조정해서 확정 지어 주십시오. 별다른 의견이 없으면 이쯤에서 회의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고작 그런 명목으로 피 같은 학교 예산을 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보다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얼마 안 되는 시간외수당으로 때우겠다는 소리였다.
교장이 시청각실을 나가자 교감과 교무부장이 뒤따라 나섰다. 일시에 좌중이 술렁거렸다. 저 머리에서 무슨 좋은 생각이 나오나 했더니 역시 교장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소리가 들렸다. 또 누군가는 자신이 맡은 업무 외에 별도의 일이 주어지게 된 점에서 화가 난다는 말도 했다. 김 선생은 다른 선생들이 간과한 부분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았다. 자신이 생각한 내용에 대해 선생들에게 말했더니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많은 선생들이, 기꺼이 힘이 되어 줄 테니 어떻게 해서든 이 일은 막아 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틀 뒤 같은 내용으로 회의가 소집되었다. 교장의 일장연설이 끝나는 동안 좌중을 둘러보니 결의에 찬 표정들을 하며 김 선생과 시선이 마주쳤다. 누군가는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 하라는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교장은 분명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별 탈 없이 스쿨버스 동승 지도교사 건이 해결된다고 믿는 눈치였다.
“이제 스쿨버스 동승 지도교사 배정표 작업이 완료된 줄로 압니다. 자, 그러면 이대로 시행해도 되겠지요?”
순간 김 선생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라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김 선생은 그래도 그들이 한 말이 있으니 먼저 말문을 트면 누군가는 지원 사격을 할 거라고 믿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믿었던 사람들 중에 그 어느 누구도 이 건에 대해서 반대한다는 의향을 밝힌 이가 없었다. 맨 처음 교장의 회유에 반대 의견을 냈던 김 선생은 수 일에 걸쳐 다섯 번이나 회의가 거듭되는 동안 여전히 자기만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 선생님만 자꾸 반대하시는 걸 보니 김 선생님은 이 일을 수행하지 못할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모양이네요. 나중에 김 선생님은 따로 교장실에 찾아오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김 선생님을 제외한 모든 선생님들은 다음 주부터 스쿨버스에 타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만 숙이고 있던 그 많은 선생들이 일제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자기만 쏙 빠지려고 잔꾀를 썼다며 비아냥대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들을 구할 것 같이 얘기하더니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며 마치 들으라는 듯 얘기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힘이 되어 줄 테니 이 일은 꼭 막아 달라며 가장 앞장서서 얘기했던 사람들이, 마치 입속의 혀처럼 굴던 사람들이 제일 먼저 등을 돌려 버렸다.
교장은 확정된 표를 교감에게 전달했다. 다음 주부터 당장 실시하라는 말과 함께, 선생들이 스쿨버스에 타는 데 있어 지장이 없도록 간식도 준비하라고 했다. 교장이 자리를 비우자 선생들도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욕지거리들이 들려왔다. 삿대질만 안 했을 뿐이지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모두가 빠져나가고 김 선생만 시청각실에 남았다. 자기 혼자 스쿨버스를 타지 않게 된 것이 기쁠 리 없었다.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교차했다. 늘 사람들의 앞모습만 보며 살아온 김 선생이었다. 그것이 그저 사람들의 전부일 거라고 믿었고, 그대로 본심이며 본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미처 보지 못한 사람들의 옆모습을, 또 뒷모습을 보고 만 김 선생은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