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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Sep 13. 2024

제 삶의 진짜 적은 저였습니다.

라라크루, '금요일의 문장공부' 2024.09.13.

오십여 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늘 실패한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뭘 하든 단 한 번도 제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려나간 적은 없었으니까요. 하물며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사랑의 감정이 싹트던 때에도 항상 저는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몸을 사려야 했습니다. 몸을 사린다는 건 그만큼 신중하다는 뜻이 아니겠냐,라고 할 수 있긴 하나, 필요한 때에 꼭 해야 하는 말이나 행동도 할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서 실패를 예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결과는 당연히 안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꼭 결과에 집착할 게 아니라 과정을 눈여겨보면 되지 않겠냐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과정 역시 중요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은 결과가 좋게 그려져야 하는 법입니다. 아무리 과정이 좋았어도 결과물로 손에 쥐어지는 게 없다면 그건 단연코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이 이렇게밖에 될 수 없었던 이유는 명확합니다. 제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가까운 곳에 저의 삶을 방해하는 복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때 그 녀석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때가 기억납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일까 궁금했습니다. 그 낯짝이라도 보고 싶었습니다. 제게 뭘 그렇게 억하심정을 느꼈기에 하는 일마다 꼬이게 만드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저를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기는 그 많은 사람들보다도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진 제 적수의 정체를 말입니다.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있지 않으면,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만날 때마다 제게 돌아오는 것은 패배밖에 없을 정도로 녀석은 강력했습니다. 그건 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제 자신이었습니다.


녀석은 평소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삶의 중요한 순간이나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마다 얼굴을 내밉니다. 가령 제가 글을 쓰고 있다면 꼼짝도 할 수 없는 결정적인 한 마디를 저에게 던지곤 하는 식으로 녀석의 간섭은 이루어집니다.

"뭐야?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글을 발행하겠다고? 웬만하면 좀 참지?"

그러고는 제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켜봅니다.


녀석의 말을 듣고 글을 작가의 서랍 속에 넣어 놓으면 금세, '봐. 내 말 듣기 잘했지?' 하는 말이 들려옵니다. 하지만 제가 그리 호락호락하게 물러설 리가 없습니다. 반 협박에 가까운 목소리를 무시하고 발행 버튼을 눌러 버립니다. 이미 엎지른 물을 담을 수는 없는 법, 다음에 또 다른 글을 쓸 때쯤이면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어느새 또 모습을 드러냅니다.


녀석이 제 일거수일투족을 방해하는 이유는 제법 그럴듯해 보입니다. 글쓰기의 경우라면 사람들의 시원찮은 반응으로부터 저를 보호하겠다는 겁니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경험에서 저를 자유롭게 해 주겠다는 겁니다. 그 때문인지 녀석은 제가 현재에 안주하길 바라지 뭔가를 하려고 하는 걸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이나 움직임이 제 속 깊은 무의식에서 나온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 녀석은 어떻게 해서든 제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목적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저는 그걸 원하지 않습니다. 물론 어느 녀석이 진짜 저인지는 어쩌면 저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도전하는 것도 저이고, 실패를 두려워해 현실에 눌러앉아 버리려는 것도 저란 사실이 말입니다. 어떤 모습이 진짜 저이건 간에 이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저와 제 진정한 적이 제 속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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