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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Sep 20. 2024

저는 예민함을 포기합니다.

2024.09.20.

오늘의 문장
감수성이 높고 예민한 성향은 사실 굉장한 재능이다. 높은 감수성 덕분에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일상의 변화에 굉장히 민감하다. 위협을 더 빨리 감지하고 피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예민하고 감수성이 높은 것이 결코 인생에 괴로움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예민한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성향을 삶을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경험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이런 성향이 가진 장점을 이용하고 누린다. ☞『예민함이라는 무기』, 롤프젤린 지음, 유영미 옮김




나의 문장


글을 쓴다고 골방에 틀어박혀 노트북을 뚫어지게 보고 있을 때 방문이 열렸습니다. 누군가 했더니 아내가 잠시 뭘 가지러 들어온 것입니다. 그냥 나갈 줄 알았더니 굳이 한 마디를 던집니다.

“당신은 조선 시대 때 태어났으면 선비가 되었을 거야.”

저는 그게 칭찬인 줄 알았습니다. 선비 좋지, 하는 표정으로 혼자 흐뭇해하고 있었습니다.

“글공부한답시고 마당에 부려놓은 볏단이 떠내려 가는 것도 모르는 선비 말이야.”

이쯤 되면 더는 칭찬이 아닙니다. 저는 또 뭔가 할 일이 있는데, 애써 외면하고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하는 얘기인가 싶었습니다.

“할 일은 다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내가 뭐 빠뜨린 거 있나?”

“아니, 없어. 그냥 그렇다는 얘기야.”

저는 괜스레 제 발 저린 도둑꼴이 되어 버립니다.


아내는 항상 제게 ‘예민함’을 요구합니다. 저와 본인과의 성향이나 성격 차이를 이해는 하나, 살아갈 때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가져 달라는 것입니다. 매사에 너무 무디다는 것, 그것이 아내가 제게 갖는 가장 큰 불만 중의 하나에 속합니다. 정말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글을 쓸 때는 누구 하나가 죽어 나가도 모를 정도로 몰입한다는 게 문제라고 했습니다. 물론 저도 억울한 측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집안일을 팽개쳐 놓고 마냥 글만 쓰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단 집에 들어가면 모든 레이더를 총 가동합니다. 쓰레기를 묶어서 배출할 때가 되었는지, 빨래 건조대에 널린 빨래는 갤 때가 되었는지, 음식물이 차고 넘쳐서 온 집안에 냄새를 풍기고 있는 건 아닌지, 입구에서부터 온갖 먼지가 굴러다녀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아야 하는 건 아는지 등을 살핍니다. 그건 같이 돈을 버는 입장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날도 분명히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별생각 없이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고,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내내 제 가슴을 후벼 팝니다. 저런 생각까지 할 정도라면 아무리 제가 할 일을 다했더라도 집에서 글을 쓸 때는 더 눈치가 보이기 마련입니다.


아내가 늘 강조하는 이 눈치는 결국 예민함 혹은 민감함 혹은 높은 감수성 등으로 귀결이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하라고 하면 하기 싫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인지, 아니 저의 오기인 건지, 아내가 그러면 그럴수록 저는 생활 속에서 예민함을 갖추기가 싫어집니다. 가령 빨래를 개는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내는, 혹은 딸은 종종 두 사람의 속옷이나 양말을 헷갈려하는 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실컷 개어 수납함에 넣어 놓으면 나중에 그걸 들고 와 저에게 따지곤 합니다. 그러면서 꼭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제발 신경 좀 쓰란 말이야.”

두 사람이 제게 말하는 게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그럴 때마다 혼잣말을 삭혀야 합니다.

‘난 신경을 그런 데에 쓰고 싶지 않은데…….’

이럴 때에 고작이라는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그런 거에 써야 하는 신경이라면 단지 그걸 헷갈리지 않기 위해 갖춰야 하는 민감함이라면 저는 포기하고 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위에 언급한 책에서 저자는 감수성이 높고 예민한 성향은 굉장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높은 감수성 덕분에 다른 사람보다도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상의 변화에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에 위협 상황을 더 빨리 감지하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만 본다면 분명 민감함이나 예리함은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굳이 필요한 측면일까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아내는 종종 글을 쓴다는 사람이 그렇게 매사에 무뎌서 무슨 글을 쓰냐,라고 말합니다. 제대로 된 글을 쓰려면 누구보다도 예민한 혹은 민감한 혹은 감수성이 높은 감각을 길러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합니다.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겠으나, 저는 예민하지 않아도 혹은 민감하지 않아도 혹은 감수성이 높지 않아도 쓸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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