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저의 결혼기념일입니다. 아니지요, 저와 제 아내의 결혼기념일입니다. 무려 23년 전 오늘, 서로 삼십 년을 떨어져 살아온 두 사람이 결혼한 날입니다. 결혼이라는 건 혼자서 하는 게 아닌데도 아내는 결혼기념일을 더는 축하하지 않습니다. 그냥 있기가 좀 뭣하니 결혼기념일이랍시고 작은 선물 하나 쯤을 건네고 마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요.
어지간해서는 결혼을 참 잘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가령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할 의향이 있냐고 물어보면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정색을 하더군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딱 세 사람을 만났습니다. 지금의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겠다는 사람이 말입니다. 물론 그분들의 아내 되는 사람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기혼자들의 만족도가 낮은 걸까요? 아니 거의 바닥에 머무르게 되는 걸까요? 만약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국엔 후회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과연 우리는 결혼을 했을까요? 죽는 순간까지 행복하게 살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다짐하는 일이 뭐가 그리 대수라고 말입니다.
현실적으로 결코 불가능한 가정을 하나 떠올려 봅니다. 23년 전 그날로 돌아갑니다. 두 사람 사이에 한창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냉정한 판단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린 결혼해야 하는 사람처럼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수만 가지를 놓고 결혼을 고민해야 합니다만, 사실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제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이니까요.
일단 표면적으로 한 사람은 후회하지만 나머지 한 사람은 축하하는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저 역시 결혼 자체는 후회하지만, 저까지 그러면 정말 이 날은 우리 두 사람에게 비극적인 날이 될 것이므로 애써 내색은 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건 알고 있습니다. 지금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고 해서 그 어떤 것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것도 말입니다. 만약 23년 전 그날로 돌아가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결혼을 후회했을 거라는 사실도 이제는 압니다.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가정법입니다.
생각으로야 무슨 일이 불가능하겠습니까? 다른 사람과 살았다면 충분히 행복하게 잘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을 테지만, 사람의 인생이란 게 그럴 리가 없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걸 후회하고 있듯, 만약 다른 사람과 했다고 해도 또 다른 이유로 후회했을 게 뻔합니다. 그것이 곧 인생인 것입니다.
하긴 친구가 그러더군요. 20년이나 넘게 지나서 무슨 결혼기념일 따위를 챙기냐고 말입니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최소한 표정 관리는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저라도 오늘을 축하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이제 와서 잘못 꿰어진 단추를 풀어헤칠 수는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