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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Nov 04. 2024

결혼기념일

283일 차.

오늘은 저의 결혼기념일입니다. 아니지요, 저와 제 아내의 결혼기념일입니다. 무려 23년 전 오늘, 서로 삼십 년을 떨어져 살아온 두 사람이 결혼한 날입니다. 결혼이라는 건 혼자서 하는 게 아닌데도 아내는 결혼기념일을 더는 축하하지 않습니다. 그냥 있기가 좀 뭣하니 결혼기념일이랍시고 작은 선물 하나 쯤을 건네고 마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요.


어지간해서는 결혼을 참 잘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가령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할 의향이 있냐고 물어보면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정색을 하더군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딱 세 사람을 만났습니다. 지금의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겠다는 사람이 말입니다. 물론 그분들의 아내 되는 사람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기혼자들의 만족도가 낮은 걸까요? 아니 거의 바닥에 머무르게 되는 걸까요? 만약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국엔 후회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과연 우리는 결혼을 했을까요? 죽는 순간까지 행복하게 살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다짐하는 일이 뭐가 그리 대수라고 말입니다.


현실적으로 결코 불가능한 가정을 하나 떠올려 봅니다. 23년 전 그날로 돌아갑니다.  사람 사이에 한창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냉정한 판단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린 결혼해야 하는 사람처럼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수만 가지를 놓고 결혼을 고민해야 합니다만, 사실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제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이니까요.


일단 표면적으로 한 사람은 후회하지만 나머지 한 사람은 축하하는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저 역시 결혼 자체는 후회하지만, 저까지 그러면 정말 이 날은 우리 두 사람에게 비극적인 날이 될 것이므로 애써 내색은 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건 알고 있습니다. 지금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고 해서 그 어떤 것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것도 말입니다. 만약 23년 전 그날로 돌아가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결혼을 후회했을 거라는 사실도 이제는 압니다.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가정법입니다.


생각으로야 무슨 일이 불가능하겠습니까? 다른 사람과 살았다면 충분히 행복하게 잘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을 테지만, 사람의 인생이란 게 그럴 리가 없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걸 후회하고 있듯, 만약 다른 사람과 했다고 해도 또 다른 이유로 후회했을 게 뻔합니다. 그것이 곧 인생인 것입니다.


하긴 친구가 그러더군요. 20년이나 넘게 지나서 무슨 결혼기념일 따위를 챙기냐고 말입니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최소한 표정 관리는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저라도 오늘을 축하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이제 와서 잘못 꿰어진 단추를 풀어헤칠 수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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