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수능 D-8.
제 카톡 프로필 화면에 표시된 걸 보고 아침부터 또 한 번 깜짝 놀라고 맙니다. 이 디데이 설정을 한 게 대략 수능 시험을 300일 넘게 남겨 둔 시점인 걸로 알고 있는데, 벌써 남은 날이 한 자리 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다 가 버렸을까요? 이건 뭐 시간이 빠르게 간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300일 조금 더 남았을 때까지만 해도 속된 말로 과연 그날이 오겠나 싶었습니다. 근 1년에 가까운 시일의 여유가 있었으니 시간이 남아도 한참 남았다고 어느 정도는 마음을 놓았던 모양입니다. 문득 옆에서 보고 있는 저도 이런데 당사자인 딸은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은 기분이 아닐까요?
다시 한번 곱씹어 봐도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8일밖에 안 남았다니요? 그것도 시험 당일을 제외하면 마지막으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도 딱 1주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공부했는지 최종 정리는 잘 되어 가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그럴 수도 없습니다.
지금 같으면 마무리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컨디션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할 때입니다. 제 궁금함 때문에 겨우 마음을 다잡고 있을 딸아이를 괜스레 흔들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으로선 그저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것 외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일전에 자면서 들었던 동영상 강의의 한 대목이 생각났습니다. 올 것은 반드시 오고, 갈 것은 어찌 되었든 간다고 하더군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고 해서 불평할 것도 없고, 어떤 날을 손꼽아 기다릴 필요도 없다고 했습니다. 뭘 그리 당연한 소리를 하냐고 하겠지만, 그 당연한 소리의 위력이 얼마나 센 것인지를 다시 또 느껴 보는 이 아침입니다.
34년 전 수능을 치던 날, 그리고 2년 뒤 한 번 더 시험에 응시했던 날, 저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솔직히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세세하게 떠오르진 않지만, 겨울이 코앞이었던 그날도 무척 추웠다는 건 기억이 납니다. 추운 데다 큰 시험까지 앞두고 있었으니 그 떨림은 말로 표현이 불가할 정도였습니다.
해마다 유독 그날은 다른 날에 비해 더 추웠다는 얘기를 듣곤 했습니다. 날씨도 추웠지만, 큰 시험을 앞둔 중압감도 한몫했을 테니까요. 올 수능 시험 당일의 날씨는 어떤가 싶어 기상청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려다 잠시 멈칫합니다. 그 생각 하나만 해도 벌써 이렇게 긴장감이 밀려오는데, 정작 시험을 쳐야 하는 딸은 어떤 심정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올 것은 온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수험장에 들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더 조바심이 나기 전에 얼른 그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진인사대천명, 준비한 만큼 결과로 돌아오게 될 일입니다. 아빠로서 딸에게 바라는 건 그저, 컨디션 조절을 잘해서 딸아이가 준비한 만큼은 결과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