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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Nov 07. 2024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

286일 차.

뒤쪽으로 물러나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고 있습니다. 곧 들어오는 왜관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열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언제쯤 들어오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몇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열차가 늦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어지간해선 자로 잰 듯 정확한 대한민국에서 기차 시간만큼 잘 지켜지는 것이 또 있겠나 싶을 정도입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7시 14분에 대구역에서 출발한다고 하면 2분 전에 열차가 들어와 있다가 딱 그 시간에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하거든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정말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으나, 두세 시간 늦는 건 보통이고 심지어 다음 날에 기차가 오기도 한다는 인도의 경우와 비교해 봐도 그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지금 제 눈에 보이는 사오십 명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마음을 먹고 있을까요? 누군가에게선 어제 미처 털어내지 못한 피로가 남아 있는 듯 보이고, 또 다른 이에게선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넘치는 힘을 느끼기도 합니다. 사람도 모두 다르고 각자가 열차를 타고 향하는 곳도 다를 테지만, 이 열차에 오르는 순간 본격적으로 하루가 시작된다는 건 똑같을 것입니다.


오늘은 제 앞에 어떤 하루가 펼쳐지게 될까요? 딸아이 등교를 앞두고 도시락 준비에 여념이 없는 제 아내는, 또 수능이 딱 1주일 남은 딸은 어떤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맞이했을까요? 그리고 부대에서 아침을 맞이한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일어났을까요? 처해 있는 상황이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지만, 오늘 하루도 잘 보내야겠다는 마음은 모두가 매한 가지일 겁니다.


어쩌면 이 시간이 제게는 가장 의미 있고 설레는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드디어 열차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속도를 줄여 승강장으로 열차가 미끄러져 들어오는 동안 이미 사람들은 출입문이 열리는 지점 앞에 가서 서 있습니다. 차창으로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합니다.


급격히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열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만큼 넓고 편하게 갈 수 있다는 뜻이니 저로선 손해 볼 일은 없습니다.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맨 마지막에 탔는데도 열차 안에 빈자리가 많이 보입니다. 아무도 없는 잔여 좌석에 편히 자리를 잡은 저는 글을 쓰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만 지나면 또 한 번의 주말을 맞이하게 되네요. 이젠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도 무색할 정도입니다. 마치 어제 월요일이 어쩌고 저쩌고 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학교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넉넉잡아서 20분만 지나면 저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을 보게 됩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우당탕탕 교실 생존기가 이어질 것입니다. 무탈한 하루를 보냈으면 합니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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