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써야 할 글이 많지만, 일단 이 녀석을 만나는 일은 그 어떤 일이든 뒤로 미루게 됩니다. 다소 불편한 감이 없지 않으나,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휴대폰으로 글을 쓰면 됩니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섭니다.
오늘 만나는 친구가 바로 제가 얘기했던 그 친구입니다. 오십여 년 인생에 제게 유일하게 남은 그 친구 말입니다. 딱 하나 있는 친구이니 이 녀석과의 만남은 제게 있어 최우선 순위의 일에 속합니다. 오늘처럼 만나러 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지하철 안에서 처리합니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은 녀석을 만나고 와서 합니다.
그 친구는 사실 어릴 때부터 알게 된 친구가 아닙니다. 교대에 와서 알게 된 녀석입니다. 23살에 처음 만났으니 올해 딱 31년째 알고 지내는 녀석입니다. 어린 시절을 함께 해 온 사이가 아니면서도, 성인이 되어 알게 된 사람도 평생의 친구가 될 수 있더군요. 아마 이 녀석이 없었다면 전 평생 친구 하나 없이 살아야 했을 겁니다.
그 친구는 저보다 많이 유능하고 다재다능한 교사입니다. 자기가 근무하는 지역에선 인지도도 꽤 높고요. 현직에 발령받자마자 창단해서 운영 중인 국악관현악단은 전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정도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특기를 잘 살린 결과입니다. 원래 국악에 소양이 있었던 친구였으니까요.
대체로 우리 나이에 그러하듯 그 친구는 승진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보통은 교감이 되어 있거나 발 빠르게 움직인 사람들은 교장이 되어 있을 정도지만, 친구는 승진에도 전혀 관심이 없어서 그냥 한 우물만 파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선생님들이 왜 저 나이에 아직도 저러고 있냐고 하지만, 생각할수록 멋진 녀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저는 제 친구를 단순한 친구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배울 점이 참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우는 사형을 대하기라도 하듯 저는 녀석을 대하고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어떤 불만 같은 게 없지는 않지만, 그 모든 걸 상쇄하더라도 저보다 몇 배는 더 나은 녀석입니다.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을 친구로 두겠다는 제 고집 때문이겠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제게서 떨어져 나가는 동안에도 불평 하나 없이 참고 기다린 것도 그 때문입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과연 그 친구에게 무슨 도움을 주고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