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일 차.
한때 주말에도 직장에서 업무와 관련한 내용을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보내곤 했습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그러고 있을 테고요. 그런 몰지각한 회사나 상사의 행동에 대해 크게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보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카톡이 가장 회신이 빨리 되는 시스템 중의 하나인 데다, 어지간해서는 카톡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사용하게 된 일종의 궁여지책입니다.
그런 시대상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요즘은 학교에서도 신학년이 배정되고 나면 동학년 선생님들끼리의 단톡방부터 만드는 형편입니다. 또 작은 규모의 학교에선 전 교직원의 단톡방 같은 걸 개설해서 운영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곳은 엄연히 공적인 공간입니다. 유연한 공간일 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가령 동학년을 예로 들어 구성원들이 나이대도 비슷하고 사이까지 원만하다면야 카톡에 유머러스한 말들을 주고받을 수도 있고, 그 어떤 말이든 가볍게 올리거나 읽을 수 있긴 합니다만, 어딘지 모르게 딱딱한 공간이라는 기분은 떨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직장에 소속된 사람들과의 온라인 소통 공간이니까요. 그래서 웬만해선 실없는 농담 따위를 이곳에서 주고받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럴 만한 사람들은 어차피 개인 톡으로 주고받기 마련이니까요.
요즘의 MZ 세대들은 단호합니다. 그들은 직장을 떠나는 순간부터 더는 그 직장에 소속된 사람이길 원하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 식으로 얘기를 하자면,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는 같은 학교에 소속된 동료교사이지만, 그 이전이나 이후 시간은 자유로워지길 바랍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일과 후에, 심지어 주말에 카톡이 오면 무척 싫어합니다. 그 싫어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나, 저는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 이렇게 주말에 카톡이 오는 걸 싫어합니다.
사실 업무적인 내용의 카톡을 반기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주말에 이렇게 카톡이 오는 경우는 두 가지 중의 하나입니다. 주말을 이용하여 학교 학생들이 대외적인 행사나 각종 대회에 참여하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을 때 함께 축하하자는 의미로 올 때가 있습니다. 물론 받는 사람 입장에선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냥 다음 날 학교에 출근해서 들어도 될 내용을 굳이 일괄적으로 보내서 주말에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머지 한 가지의 경우입니다. 그나마 느닷없는 동료교사의 결혼 소식은 충분히 축하할 만하고 또 즉시 듣지 못했다고 해도 월요일에 알아도 별 문제는 없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장례와 관련된 소식은 그때그때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화급을 다투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상을 당한 동료교사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한다는 것만큼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은 또 없는 법입니다.
어제도 예기치 못한 부고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그런데 대뜸 문상에 참여할 인원을 학년별로 파악하여 교무부장님에게 회신을 해달라고 합니다. 슬슬 스팀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이번과 비슷한 일을 몇 번 겪으면서 어지간해선 주말에 결코 연락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익히 경험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 메시지는 '내가 연락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연락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라도 하듯 원문을 그대로 복사하여 동학년 단톡방에 올렸습니다. 원문에선 학년별로 문상에 참여할 인원을 말해주면 그들에게 몇 시에 어디에서 만나서 함께 들어갈 것인지를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 어떤 식으로든 답신이 올 거라고 믿었습니다.
숫자가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애초에 메시지를 올렸을 때 뜬 숫자 '7'이 어느 순간 '2'까지 내려갔습니다. 저를 제외한 일곱 분의 선생님들 중에서 두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읽었다는 뜻입니다. 급한 소식이라며 어제 메시지를 받았을 때가 저녁 9시였고, 오늘 아침 10시까지 회신해 달라고 했습니다. 한 번 더 답장을 독촉하려다 관두었습니다. 일단 내일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오늘 아침 10시가 되어 단톡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무도 답장을 남기지 않았더군요. 저는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상에 참여할 수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고 말을 해야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분에게 제가 답장을 할 수 있는 상황인데 말입니다. 거의 이 정도면 무례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특히 MZ 세대라는 요즘의 젊은 선생님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도무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건 제가 학년부장 교사이고 다른 분들은 담임교사이니 그런 저에게 무례하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동학년이라는 수평적인 입장에서, 이건 동료교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조차도 져 버리고 있는 행동이라는 걸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언젠가 어떤 채널에서 그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누군가가 어떤 회사에 면접을 보러 오기로 해서 약속된 시간에 모든 세팅을 끝내놓고 기다렸더니 오지 않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회사 측에서 면접 예정자에게 전화를 걸어 왜 안 왔냐고 물었습니다. 면접에 오기로 했던 사람은 카톡을 씹으면 안 간다는 뜻인데 그것도 몰랐냐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고요. 설마 우리 동학년 선생님들도 그런 뜻으로 저에게 아무런 답신을 남기지 않은 것일까요?
참 경우에 없는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그들의 행동에 대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지적을 하면, 그들은 되려 우리에게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고리타분하게 그런 걸 따지고 드냐는 말을 합니다. 한 마디로 개꼰대 취급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늘 말합니다. 좀 쿨하게 살 수 없느냐는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단호히 그들이 무례하다고, 경우 없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들의 '무례함'이 '쿨함'으로 둔갑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카톡을 씹는 건 거절의 의미입니다.
그들의 몰지각한 행위를 정말 그렇게 받아들이고 더는 문제 삼지 않아야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