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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15. 2023

잘 죽는다는 것은…….

018: 재니스 A. 스프링 외 1인,『웰 다잉 다이어리』를 읽고……

과거 부모님이 두 분 다 생존해 계셨을 때 전 어떤 일을 계기로 의절을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근 7~8년, 통 왕래조차 하지 않으며 살아왔습니다. 살아가는 게 저 나름으로는 너무 힘겨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다고 해도 마땅한 변명조차 되지 못한다는 걸 모를 리는 없습니다. 원망스럽고 미워도 그들은 저의 부모님들이고, 미우나 고우나 저는 그분들의 자식이니 어찌 서로를 조금이라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벌써 몇 년 전에 이미 두 분 다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이젠 그 기억마저도 씁쓸한 하나의 추억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만, 공교롭게도 저에게 이 책은 이미 제 삶에서 놓아버린 저의 부모님을 깊이 생각하게 해 준 책이었습니다. 정말 반갑지 않은데 하면서도 읽는 구절구절 머릿속에서, 그리고 가슴속에서 잠시도 떠나려 하질 않았던 그런 책이었습니다.     


인생은 순환형 마라톤 코스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해 봅니다. 태어난 시점을 출발점으로 본다면 어딘가쯤에서 반환점을 돌게 됩니다. 물론 그 반환점이 정확히 언제쯤 우리에게 오는지, 혹은 제 나이가 쉰둘이니 이미 반환점을 돌았겠다 싶긴 해도 언제 돌았는지 알 수 없는 지경입니다. 어쨌거나 반환점을 돌고 나면 긴 타원형의 궤적을 따라 도착점으로 향하게 됩니다. 당연히 그 마지막 종착역은 죽음의 순간이겠습니다.


저는 언제까지고 천년만년 늙지 않고 살아가게 될 거라 믿을 만큼 철없진 않습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오래 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라지만, 저 역시 제가 저 먼 곳으로 떠나게 될 날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직까지 죽음을 생각하기엔 이른 시기가 아니겠나, 하고 말입니다. 그러던 얼마 전, 저와 그다지 친분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학부 시절 때의 제 동기 한 사람이 무려 여섯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두고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그 일을 겪으며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 이제 나도 그리 멀지 않았을 수도 있겠구나!'하고 말입니다.


그런 제게 이 책은 충분한 자극제가 되어 준 책이었습니다. 얼핏 추산했을 때 절반 정도의 생이 남았을 거라고 믿고 싶은 저에게 말입니다. 사실 이 책은, 책을 처음 펼쳐 들었을 때 느낀 적지 않은 당혹감을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전혀 모르고 있던 건 아니었지만, 제목이 주는 그 반어법적인 느낌으로 인해 책에 더 끌렸다는 걸 말입니다.


보통 웰(well)이라고 하면 상태가 진행 중이거나 유효한 것에 붙여 쓸 때 의미가 발현되는 낱말입니다. 흔히 말하는 Well-being(웰빙)이 그렇고, fare well(편안한 생활을 하다)에서의 well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Well dying(잘 죽기? 편안하게 죽어가기?)이라니, 참으로 기이한 조어법에 한동안은 생경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과연 잘 죽는다는 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돈에 둘러싸인 채 온갖 좋다는 약과 치료법을 동원해서 죽는 날까지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죽어가는 것이 잘 죽는 것일까요? 수많은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그들과 일일이 기억을 교감하며 임종을 맞이하는 것이 잘 죽는 것일까요? 아마도 돈으로 Well dying이 해결될 수 있다면 지구상의 거의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도 '잘 죽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의외로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었던 이 책은 보기와는 달리 너무도 간단한 스토리를 갖고 있습니다. 세세한 것까지 다 들먹인다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단 한 줄로 줄여 본다면 아마 이쯤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한 미국인 임상심리 전문가가 홀로 남은 채 병들어 야윈 아버지를 죽는 날까지(5년이란 시간 동안) 수발을 들면서 생각하고 느끼고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한 일기     


정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책이었습니다. 어차피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이란, 의사도 아니고 임상전문가도 아니니 군데군데에 드러나는 의학적인 지식들은 몰라도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은 단 한 줄도 읽지 않고도 어떤 내용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책입니다. 또한 그렇게 짐작한 내용이 실제의 책 내용과 조금도 다르지 않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스레 시간을 쪼개어가면서까지 이 책을 읽은 것에 대한 후회로 직결되진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그런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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