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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Feb 04. 2024

'미메시스' 그리고 '낯설게 하기'

005.


성우연기는 외부로부터의 연기습득의 측면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화자 내부로부터의 존재 발현에 가깝습니다. 성우가 되기 전 초기 훈련과정에서의 방식이 대체로 타인의 연기패턴을 모방하는 식으로 접근하지만, 그것은 과정에서 하나의 연습방식이며, 성우의 연기는 미메시스를 지향합니다. 누구나 ‘무엇인 척’보다는 ‘무엇인 상태’에 더 크게 열광하며, 그것은 목소리연기에서도 동일합니다. 그렇기에 ‘나무’를 연기할 때에 성우는 실제로 ‘나무 되기’를 시도하며, 미메시스적 결과물을 목소리로 담아냅니다. 나무로의 모방된 목소리는 기존에 생산되고 제작된 그 누군가의 연기를 모방하고 시도하는 것이 됩니다. 실제로 유사하게 반복되거나 익숙하다면 리얼리티가 아닙니다. 리얼리티의 본질은 ‘낯설게 하기’에 있습니다. 모방하는 것에서 익숙함을 갖추게 되어 궁극으로는 리얼리티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진정한 리얼리티 연기는 기존에 들어본 적이 없는 낯섦을 청자에게 선사하며, 성우연기를 모방의 기능으로서가 아닌 창작의 예술로 인식하게 합니다. ☞ 본 책, 58~59쪽

이 책은 작년에 이어 이번에 두 번째로 읽게 된 책입니다. 음, 뭐랄까요? 아무래도 이 책은 저의 식견을 훌쩍 넘어서는 책입니다. 이곳 브런치스토리에서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계신 데다, 매번 많은 분들이 읽고 공감하는 글을 써서 올리는 분(이숲오 eSooPo 님)의 저서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책의 저자는 성우입니다. 성우는 영어로 voice actor(혹은 actress), voice artist 등으로 표현이 됩니다. 말 그대로 목소리로 연기하는 배우가 바로 성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배우라고 하면 통상적으로 화면에 그들의 모습이 비쳐 그들의 말이나 행동 혹은 표정 등으로 연기하는 사람을 지칭하지만, 성우라는 이들 배우는 화면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단지 목소리만으로 그들의 연기력을 선보여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연스레 그들은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와는 달리 그들의 연기력에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일단은 마이크 앞을 떠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목소리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분히 그렇다 보니 성우가 연기를 한다고 하면, 성우에게 무슨 연기가 필요하겠느냐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우는 목소리로 전달할 수 있는 모든 것 특히 호흡에서 그 제한적인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위의 인용된 부분에서 밝히고 있듯, 성우는 타인의 연기패턴을 모방하는 식으로 접근하지만, 최종적으로 그들의 연기는 미메시스를 지향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미메시스는 예술 창작의 기본이 되는 원리를 말하는데, 그리스어로는 모방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방은 복제가 아닌 재현에 가깝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인용한 글의 첫머리에 있는 '존재 발현'이라는 것이 결국은 이 '재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플라톤은 모든 예술의 창조는 미메시스의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이데아의 세계'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신이 창조한 형태이며, 인간이 자신의 생활 안에서 지각하는 구체적인 사물들은 이 이상적인 형태가 그림자와 같이 어렴풋이 재현된 것이다. 따라서 화가·비극작가·음악가는 모방된 것을 다시 모방하는, 진리로부터 2차례나 떨어진 사람이다. ☞ 다음 백과, '미메시스' 중에서


제가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본 부분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누구나 ‘무엇인 척’보다는 ‘무엇인 상태’에 더 크게 열광하며, 그것은 목소리연기에서도 동일합니다. 그렇기에 ‘나무’를 연기할 때에 성우는 실제로 ‘나무 되기’를 시도하며, 미메시스적 결과물을 목소리로 담아냅니다.


미메시스적 결과물을 목소리로 담아내는 사람들이 성우라는 얘기입니다. 그 말은 곧 미메시스적 결과물을 글에 담아내는 사람들이 바로 작가라는 얘기가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일종의 작가적 사명을 떠올려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됩니다. 본 책의 저자가 강조하듯, 유사하게 반복되거나 익숙하다면 리얼리티가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습작한 것은 문학 작품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저 복제품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예술적 미메시스는 복제에서 벗어나 재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방적 차원에서의 단순 복제와 재현(존재 발현)을 구별하는 것이 바로 '낯설게 하기'가 되는 것입니다. 본 책의 저자가 강조한 것처럼 이 '낯설게 하기'가 곧 리얼리티의 본질이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리얼리티 연기는 기존에 들어본 적이 없는 낯섦을 청자에게 선사하며, 성우연기를 모방의 기능으로서가 아닌 창작의 예술로 인식하게 합니다.


진정한 리얼리티 작품은 (이와 유사한 무수히 많은 작품들을 이미 예전에 읽어봤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단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낯설게 인식된다는 착각을 독자에게 선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제가 기발한 스토리를 생각해 낸다고 해도 그것이 세상에 단 한 번도 쓰이지 않았을 리는 없는 것입니다. 애써 쓴 제 글이 (단순한) 이미테이션에 그치느냐, 미메시스가 되느냐를 결정짓는 가장 확실한 조건이 바로 이 '낯설게 하기'에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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