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가다 어느 역에 정차합니다.
이 역에 내리면 당신 친정에 갈 수 있습니다.
갑자기 나는 미어캣이 되어
고개를 길게 늘어뜨린 채 주변을 둘러봅니다.
혹시 당신과 마주칠까 싶어서입니다.
이러다 당신이 이 지하철을 탈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문이 닫히고 다시 열차가 움직입니다.
모르지요.
이 긴 열차 속 어느 칸에 당신이 타고 있을지도요.
혼자 행복한 상상을 해봅니다.
맞은편에 당신이 앉아 있자만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 아직 나를 못 봅니다.
고개를 들어 날 보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반가워할까요, 아니면 당황스러워할까요?
뚫어지게 당신을 보고 있던 나는
언제쯤 당신이 고개를 들지
마음을 졸이고 있을 뿐입니다.
정작 당신이 나를 보면
눈도 못 마주치는 주제에 한참 전부터 당신만 쳐다봅니다.
드디어 눈이 마주칩니다.
화들짝 놀란 당신은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넵니다.
2미터쯤 떨어진 거리에 있으니
아주 작은 소리는 들리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보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당신을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네, 뭐라고요,라는 듯 몸을 앞으로 기울입니다.
입을 오물거리던 나는
몇 센티미터 더 가까워진 당신을 보며
굳게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지금껏 간직해 온 비밀입니다.
이제 와 당신에게 들킬 순 없습니다.
내려야 할 역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옵니다.
꿈속에 있다 빠져나온 듯
몽롱한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정말 어느 칸에 당신이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