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전차는 왜 필요한가?

강철의 야수들의 탄생

by 전장의서가

� 프롤로그: 전차는 왜 필요한가?


참호전.

인류가 처음 마주한 산업화된 지옥의 이름이었다.

1914년, 유럽의 초원과 들판 위에서 시작된 전쟁은 불과 몇 달 만에 미동조차 없는 고착 전선으로 변모했다. 양 진영은 삽과 철선을 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고, 그렇게 전장은 끝없는 참호로 가득 찼다.

하루에도 수천 발의 포탄이 하늘을 갈랐다. 사람의 살과 진흙, 철 조각이 뒤엉킨 채 대지에 가라앉았고, 그 위로 또 다른 병사들이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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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머리를 들면 저격수가 기다리고 있었고, 철조망을 넘으면 기관총이 포효했다. 진격은 곧 학살이었고, 방어는 고통의 연장이었다.

"죽기 위해 앞으로 간다."

병사들은 그렇게 말했다. 어떤 이들은 발끝으로, 어떤 이들은 복부로 피를 쏟으며 전진했다.

프랑스의 솜 강에서는 하루 만에 6만 명의 영국 병사가 쓰러졌다. 6만. 그들은 적을 보지도 못한 채 땅 속으로 사라졌다.

누구도 전쟁이 이토록 정지된 채 끔찍할 수 있으리라 상상하지 못했다.

전장은 지옥이었지만, 그 지옥에 희망의 불씨조차 보이지 않았다.

고착된 전선을 돌파할 수단은 없었다. 기병대는 더 이상 유용하지 않았고, 인간의 몸은 기계보다 약했다. 무기는 진보했으나, 전략은 낡아 있었다.

전선은 수년째 그대로였다.


강철의 야수들의 탄생

하지만 인간은 절망 속에서도 돌파구를 찾아내는 존재였다.

영국의 공학자들과 군인들은 어느 날, 한 가지 발상을 떠올렸다.

"병사가 갈 수 없다면, 기계로 돌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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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마디에서 전차(Tank)의 개념이 태어났다.

포신을 단 강철 몸체, 진흙을 짓밟는 무한궤도, 기관총과 철갑으로 무장한 쇠로 된 생명체.

그들은 이것을 ‘탱크’라 불렀다.

처음엔 그저 물을 나르는 이동식 용기처럼 위장된 이름이었다. 비밀을 감추기 위한 명칭.

그러나 곧, 그 단어는 전장을 바꾸는 상징이 되었다.

1916년 9월, 솜 전투의 한복판. 새벽 안개가 걷히기도 전에, 땅은 묵직한 진동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독일군은 그 진동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병사들은 귀를 기울였고, 지휘관은 망원경을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진흙 위로 꿈틀대며 전진하는 괴물. 총알을 튕겨내고, 포탄에도 멈추지 않는 기계의 거인.

포신을 내뿜으며 철선을 짓밟고, 참호를 넘어오는 존재.

병사들은 눈을 의심했다.

"악마다."

"괴물이다."

그건 병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인간이 아닌 것, 무언가 다른 생명체가 전장에 들어선 것 같았다.

공포가 엄습했다.

총은 듣지 않았다. 수류탄도 소용없었다.

독일군은 도망쳤다. 참호를 버리고, 포대를 버리고, 뒤돌아 달렸다.

그날, 세계는 알게 되었다. 전쟁의 형태가 바뀌었다는 것을.

전차는 왜 필요한가?

전차는 단지 하나의 무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지된 죽음의 세계를 다시 흐르게 한 움직임의 신호였다.

피를 뿌려도 바뀌지 않던 전장을, 강철이 짓밟으며 바꿨다.

포신을 든 쇠가, 인간의 몸을 대신해 포화를 맞고, 철선 위를 가르며 나아갔다.

전차는 인간의 한계를 보완한 기술의 결정체였으며,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태어난 ‘필연’이었다.

사람이 걸을 수 없는 땅을 걷고, 총알을 견디며 나아가는, 그러면서도 인간의 목적을 수행하는 전장의 파수꾼.

그것이 바로 전차였다.

그리고, 시작은 끝이 아니었다.

전차는 진화했다. 더 크고, 더 빠르고, 더 강력하게.

참호는 이제 방어선이 아니라, 돌파 대상이 되었다.

인류는 새로운 전장을 맞이했다. 참호전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전차는 단지 전투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고통 속에서 쥐어짜낸 절규의 산물이다.

쇠가 인간을 대신해 피를 흘려야 했던 그 시대.

우리가 전차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지 전술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절망과 두려움을 함께 이해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묻는다.

전차는 왜 필요한가?

그 질문은, 단지 기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시대를 통과해왔는지를 되묻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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