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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vcmw May 26. 2024

여행은 오직 현재에만 머물 수 있게 해준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독서 background

영화 up의 OST 'Married life'. 


     이 노래는 저에게 공감각적 이미지를 가져다주는데요. 그런 노래가 몇몇 있는데 이 노래가 그중 하나입니다. 이 노래를 미국에서의 2019년 가을학기 때 정말 많이 들었었는데, 바로 아침 수업을 갈 때에요. 주로 찬 칼바람이 부는 한국과는 달리 제가 사는 곳의 10월 말에서 12월 초의 날씨는 굉장하답니다. 높고 푸른 하늘과 평소와는 다르게 습하지 않은, 정말 산뜻한 날씨의 연속이에요. 햇빛이 내리쬐지 않고 제 눈높이에 있을 시간 즈음 이 노래를 들으며 산뜻한 바람을 맞는 아주 기분 좋은 저를 이 노래를 통해 연상할 수 있답니다. 



     이 책은 총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첫 장은 '추방과 멀미'. 가장 좋아하는 챕터에요. 이 챕터를 읽으면서 약간 소름 돋고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구절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첫 번째 장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었답니다. 이 책은 구성이랄까 짜임새가 참 좋았어요.

     처음의 작가가 겪었던 경험담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그와 관련된 책이라든지 칼럼 또는 또 다른 작가의 경험들을 사이사이 넣어요. 그런 추가적인 내용과 작가의 첫 번째 경험담이 잘 융화되면서 결론에서는 다시 작가의 경험담으로 돌아온답니다. 그리고 작가가 얻는 생각과 깨달음을 이야기하며 마무리를 지어요. 처음에 작가의 경험담에서 시작하여 여러 가지 연결 요소들을 지나 또다시 작가의 경험담으로 돌아오는, 마치 수미상관*의 구조로 된 각 장은 정말 짜임새 있고 인상적이에요. 경험담에서 다른 이야기를 추가할 때, 처음엔 이런 이야기를 왜 시작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다가 그 연결고리에 대해 읽을 때 즈음이면 딱 깨달음이 온답니다. 그때의 기분과 느낌이 참 좋은데요. 뭔가 오랜 수련 끝에 진리를 깨달은 학자의 마음이랄까.

* 완전한 수미상관의 구조는 아니고 제가 느끼기에 그렇답니다 :)

     그리고 맘에 드는 문단은 소리내어서 읽었어요. 잔잔한 음악과 어우러지는 목소리는 뭔가 포근했답니다. 소리 내어서 읽으면 좋은 점이 있다면 우선 좀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어요. 텍스트를 눈으로 읽고 동시에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기억에 더 오래 남아요. 또, 제가 소리 내어 읽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눈으로 읽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속도가 줄고, 한 번 읽었던 것을 소리 내어서까지 다시 읽는 것이기 때문에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하기에 좋답니다. 뭐 두루두루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추방과 멀미' 장에서 나오는 작가의 경험담, 즉 이 장의 시작은 바로 작가가 중국에서 추방당하는 이야기인데요. 그리고 추가되는 내용은 멀미와 중국 유학 시절의 경험담이에요. 만약 여행이 내가 계획한 대로 아무런 탈 없이 이루어진다면 그 것을 의미 있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낯선 곳에서 이뤄지는 여행이 아무런 탈 없이 순순히 이뤄진다면 그 순간에는 안정적이고 평온하기는 할 것이지만,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당혹스러움이나 두려움 등 뜻밖의 일들을 경험할 수도 있어요그리고 그런 낯선 경험들은 우리의 인생의 가치관을 변화시킬 수도 있고 교훈을 가져다 줄 수 있으며, 사소하게로는 저녁식사 시간의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어요.

      작가의 말처럼 설령 우리가 여행에서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는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편안한 믿음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지만, 여행을 떠난 이상, 여행자는 눈앞에 나타나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낯선 현실에 맞춰 믿음을 바꿔나가게 돼요. 여행은 일종의 도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상이라는 안정된 곳에서의 삶을 계속할 수 있지만,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 낯선 음식과 거리를 느끼는 여행을 향해 한 걸음발을 떼는 순간부터 우리는 새로운 시각과 일상에선 얻을 수 없는 다른 깨달음을 가져다줍니다.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입니다. 여행이 우리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시간은 우리의 일상에 비하면 물리적으로 정말 짧은 시간에 해당돼요. 우리의 인생을 크게 봤을 때 여행의 순간은 찰나이고, 그렇게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죠. 이런 일상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근심으로 둘러싸여있고요. 이런 일상에서부터 오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으로부터 '삼십육계 줄행랑'을 쳐도 좋아요. 그러기에 좋은 방법이 바로 여행이 될 수 있답니다. 여행은 나를 둘러싸는 일상이라는 냉정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에요.

<잡념 타임>     

     공부는 엉덩이 싸움이라는 말이 있다. 고등학생 때 그 말을 실천했었다. 아무 무식하게 열심히. 옆에 있던 여자인 친구들을 따라서 다같이 하루 종일 엉덩이만 붙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는 순간 졸게 된다. 그러면 몇십 분, 길게는 한 시간이 휙 지나갔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졸지 말자하고는 몇 분 뒤 다시 존다.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엉덩이를 의자에만 붙인 채 계속 공부를 했다. 그러다 (무슨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닌 거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휴식을 주었다. 처음엔 나에게 휴식을 준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일말의 여지를 준 것으로 간주되어서 결국 나태해지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 생각을 바꾸었다. 몇 시간 동안 공부를 하고 점심시간 30분 정도의 휴식시간을 나에게 주어줬다. 그 휴식시간만큼은 공부에 대한 걱정과 다른 애들은 이 시간에 공부를 하고 있겠지?라는 경쟁심을 저 멀리에 두고 온전히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그 시간을 즐기기로 하였다. 그때 당시에는 쉬는 시간 10분도 아까워서 그 시간에 공부를 했던 나였기에 점심시간 30분을 날린다는 건 정말 큰 차이였다. 그러나, 물리적인 시간은 30분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공부시간 - 30분은 오히려 더 효율적이었고 그 시간의 질적인 가치는 상당했던 것 같다.

     여행은 저에게 휴식입니다. 일상의 불안에서 조금은 벗어나 현재에 최선을 다하게 되고,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되어요. 여행이 나에게 휴식이듯이 그 휴식을 위해서 여행을 떠나기 전 나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기도 하지요. 여행이 일상의 원동력이 되고,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다시 돌아왔을 때도 좋은 영향을 끼칩니다. 여행으로 날려버렸던 스트레스 덕분에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해줍니다. 때로는 여행에서 지치고 힘들었어서,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 챕터에서 작가는 자신이 출연했던 <알쓸신잡>에 대한 경험담을 써내려 갑니다. 재작년에 한참 알쓸신잡 유럽편을 봤었는데 여행의 이유 책을 다 읽고 나서 알쓸신잡 시즌 1부터 다시 보고 있어요 (글은 2020년 4월에 작성되었어요). 제목 그대로 알아두

면 쓸데없는 잡학이지만, 그 이야기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의 입장(유희열의 입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에서 이 프로그램을 보면 참 흥미롭고 그렇게 많은 정보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참 신기하기도 해요. 저에게 사피오 섹슈얼 성향이 완전히 있는 듯하네요.

     나영석 피디는 알쓸신잡 출연진들에게 그저 여행을 하라고만 지시한다고 해요. 출연진들은 그저 여행을 하며 대화를 하고 끝내는 것이죠. 그래서 알쓸신잡 촬영을 하면서 작가는 이런 질문에 봉착하게 됐다고 해요. 나는 과연 잘 하고 있는 건가? 이 프로그램은 도대체 어떤 프로그램인가? 그리고 작가는 다음과 같이 그 해답을 찾아갑니다. '변신'으로 잘 알려진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성'에서 성을 찾아가는 건축기사 K는 성이 어디에 있냐고 거듭하여 묻습니다. 사람들은 여기 또는 저기를 가리키고 때로 어떤 사람들은 그가 이미 성에 들어와 있다고 말합니다. 작가는 카프카처럼 현대의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누구도 자신이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알기 어렵다는 것, 아니 그 목적지가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지 조차 모른다고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유일하게 알 수 있는 사실 즉, 내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현재에 집중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현재를 즐기자. 인간은 현재에 집중할 때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합니다. 그리고 여행은 오직 현재에만 머물 수 있게끔 해줍니다. 즉, '성'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다니지 말고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깁시다. 이 순간은 유일하며 다신 오지 않으니까요.


 


     책을 읽다보니 제가 하고 싶은 여행이 생겼어요. 즉석 인화가 되는 프린트기를 들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대 입장에서 제가 그런 사진을 받는 입장이라면 정말 행복할 것만 같아요. 스마트폰이라는 편리한 기계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사진을 찍고, 확인하고, 저장할 수 있지만, 그 인화된 사진이라는 실존하는 것은 느낌이 확연하게 다른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기억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 각자의 여행을 실존하는 무엇인가로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행에서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가 2019년, 혼자 뉴욕 여행을 갔을 때 만났던 미국 친구가 생각이 났어요. 브루클린 브릿지에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다가 이야기를 계속 나누게 되었고 나중엔 서로 연락을 하여 저녁까지 같이 먹었었는데, 그분께서 저에게 뉴욕 유람선 티켓, 뉴욕 버스 투어 티켓을 그냥 줬었어요. 그때 아무런 대가 없이 받았던 선물이 참 기억에 남네요. 저도 다음에 만난 여행객에게 도움을 주어서 그 사람의 머릿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요.


  


     이틀만에 다 읽었던 책 <여행의 이유>. 김영하 작가가 생각하는 여행의 이유를 느껴볼 수 있었어요. 저도 작가처럼 저의 여행과 저의 여행의 이유를 이야기할 수 있는 축적된 경험과 주관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음악과 함께 읽었던, 소풍 같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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