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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노래 Jul 12. 2021

한강에 이슬진 기억들

한강.


‘한강’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이 있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함께하는 사람이 친구든, 가족이든, 연인이든. 한강은 그 모든 것을 포용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강이라는 장소에 맺힌 각자만의 추억이 있기 마련이다.


한강은 오늘도 따사로운 햇살로 반짝인다. 우리의 추억도 매한가지이다. 이슬지는 물방울이 투명히 그 속을 보여주듯, 한강에 남기고 온 우리의 기억은 그 자체로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설령 세월의 먼지가 섞이고, 다른 추억이 담긴 이슬과 합쳐서 더 큰 물방울이 되더라도…


그렇기에 내게 한강이 더욱 애틋하게 다가오는 것일까. 한강을 찾아가는 나는 매 번 다른 내가 ‘나’가 되어 있지만, 그 자리에 두고 온 ‘나’만큼은 변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기에. 그 이슬방울들이 차곡차곡 모여 언젠가 하나의 큰 물결을 이룰 때 ‘나’라는 존재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작은 소망을 바라본다.


그러기 위해 한강에 이슬진, 그중에서도 특히 소중한 두 개의 기억을 글로 남기려 한다.


나도 아직 잘 모르는 나를 위해서.


19살의 여름, 반포 한강공원


한강에서 나의 첫 추억은 고등학교 3학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한 시간에 한 대가 오는 버스를 타고, 다시 꼬박 한 시간을 달려야 시내가 나오는 용인의 시골에 있었다.


한창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나와 친구는 충동적으로 기숙사에서 나와 무작정 마을버스를 탔다. 무턱대고 학교를 탈출한 두 소년들은 어디로 향할지도 모르는 채 버스에 몸을 맡긴 것이다.


저녁 어스름이 차츰 붉게 물드는 버스 차창 밖을 내다보며 문득 한강이 떠올랐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화면 너머로만 봐 왔던 푸르른 한강변, 그 한강에서 마주하는 노을이 궁금해진 것뿐.


그렇게 배고픔도 잊고 장장 세 시간 동안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달려온 우리를 맞이해 준 반포 한강공원은 형형색색의 색조로 빛나고 있었다.


무지갯빛 LED가 빛나는 반포대교부터 가지각색의 디자인을 뽐내는 푸드트럭들. 무엇보다도 파아란 한강 위를 덮어오는 붉은 노을까지, 항상 가슴속에 품어 온 그림 같은 풍경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날 나와 내 친구는 기숙사에서 몇 날 몇 일간을 밤새우며 나눈 대화보다도 깊은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한강이 어느덧 초승달의 빛으로 반짝거릴 때 즈음, 우리는 기숙사로 못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20살의 봄, 여의도 한강공원

시간이 흘러 맞이한 스무 살의 봄.


대학생이 된 나에게 벚꽃과 함께 그녀가 찾아왔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날, 여의도 한강공원의 산책로를 함께 걸었다.


유난히도 보름달이 밝은 날이었다.

아직은 꽃샘추위로 바람이 조금 차가웠고, 밤이 깊어지며 인적도 차츰 줄어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오가던 대화도 사라졌다.

다만 처음 출발할 때보다 우리의 그림자가 조금은 가까워져 있었다.

그리고 가까워진 나와 그녀 사이에 포개어진 두 손의 그림자가 새로이 드리웠다.


벚꽃 같던 그녀는 여름 장마에 꽃비가 내리던 날, 나의 곁을 떠나갔다.


나도,

그대도,

이제는 사라져 버린

오늘 밤에도 한강에 달이 밝게 빛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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