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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노래 Jul 16. 2021

담배 연기 너머 보이는 것들

오늘도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몇 번을 찰칵여야 불이 붙는 오래된 라이터가 또 말썽이다. 슬슬 짜증이 날 때쯤 담배가 타오른다. 그렇게 어두운 밤하늘 한 구석이 다시 담뱃불로 붉게 물들어 간다.


들이마쉬는 숨에 이어폰을 끼고 요즈음 자주 듣는 노래를 재생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기를 끄는 노래들은 나름의 규칙이 숨어 있다. 저마다 소재는 다를지언정 사람들의 기억을 자극하기 쉬운, 일견 ‘보편적’인 노랫말을 풀어내는 노림수가 대표적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 노래는 그 자체로 온전하다. 그런 노래들은 듣는 이의 추억, 감정의 개입 없이 순수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래서 그 노래는 하나의 소절에도 오롯한 당신의 인생을 담고 있다.


요즈음 자주 듣는 이 노래의 화자는 어떤 사랑을 했을까, 그런 상상을 해 보며 숨을 내뱉었다. 자욱하게 깔리는 담배 연기 너머로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보름달이 반짝인다. 이렇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간인가. 잠시 하던 생각은 마음 한편에 미루어두고 가만히 달을 바라본다. 순간 바람에 일렁이는 구름이 달을 가렸다. 하지만 달빛은 구름도 담배 연기도 꿋꿋이 겪어내고 나의 눈을 변함없이 비춘다. 왠지 모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내일 달이 뜨지 않더라도 무엇을 믿고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지 알게 되었으니.


다시 고개를 내려 담배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늦은 밤, 고요한 이 새벽에 나와 있을 때면 낮과는 전혀 다른 풍경의 거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적막한 밤의 길거리를 홀로 집으로 향하는 이들의 얼굴에는 오늘 하루가 고스란히 드리운다. 매 분 매 초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쏟아지는 뜨거운 태양빛을 피해 써야만 했던 마스크.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돌아온 이들은 오늘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낮의 사회로부터 쓴 가면에서 해방된 이들의 살아 숨쉬는 감정들이 이 거리를 가득 채운다.


어느덧 담배가 절반 넘게 타들어갔다. 가벼운 어지럼증이 몸을 휘감는다. 연기를 한 모금, 또 한 모금 내뱉으며 홀로 남은 내 자신을 발견한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길고양이 한 마리가 쓰레기를 헤집고 있다. 문득 뜨거운 응어리가 가슴을 메어온다. 애써 잊으려 했던 생각들이 다시금 나를 옥죈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느 날 뒤를 돌아보았을 때 거울엔 나도 잘 모르는 낯선 내 모습이 있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일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이미 출발할 때부터 잃어버렸다는 것도 모른 채.


담뱃재를 툭툭 털어내고, 마지막 한 모금을 깊게 들이켰다. 요즈음 자주 듣는 노래의 화자도, 나를 비추는 저 달도, 길거리의 낯선 이들도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한 숨. 지금까지 홀로 아픔을 감당해 온, 나조차도 알아주지 않은 내 마음을 담아 마지막 한숨을 쉬어낸다.


돌아가기 전에 은은하게 빛나는 보름달을 향해 작은 소망 하나를 건네본다. 아무도 내게 말해줄 수 없는 내 자신을 언젠가 내 스스로 찾아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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