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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노래 Jul 18. 2021

그런 날이 있다

그런 날이 있다.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아침일 텐데 눈을 뜨고 고개를 드는 것만으로 힘이 부치는 그런 날.


보통 그런 날에 안 나갈 수 없는 일정이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마주한 거울 속 나는 습관이 되어버린 미소를 짓고 있다. 마음이 아려 온다.


핸드폰이 울린다. 평소 있어야 할 자리에 핸드폰은 보이지 않고, 날카로운 벨소리만 귀를 긁는다. 간신히 찾아낸 핸드폰에 집에서 온 전화가 울리고 있다. 아침은 챙겨 먹었는지, 오늘은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는 부모님의 걱정을 짜증으로 보답한다. 전화를 끊어버린 자리에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그냥, 그런 날이 있다.


집을 나서는데 하늘이 너무 맑은 날. 따사로운 햇살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사람들 사이에 홀로 먹구름으로 가려진 날. 집에 돌아올 때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온 몸이 젖는 날. 평소 좋아하던 빗소리가 가슴에 날카로운 송곳처럼 찍히는 날.


피곤한 몸을 집까지 이끌고 온 것이 마지막 최선이 되는 날. 씻을 생각도,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못 하고 바로 침대에 쓰러진다. 거울을 보는 것이 두려워 그냥 그렇게 밤을 새웠다.


몸이 아픈 날에는 병원에 다녀온다.

마음이 아픈 날에는 누군가에게 안겨 펑펑 울곤 한다.

그런데 어디가 아픈 지조차 모르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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