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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노래 Jul 22. 2021

필름 카메라에 담긴 마음

오랜만에 사진관에 찾아갔다. 한 장, 또 한 장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필름 한 통을 비워 버린 것이다. 현상한 사진을 스캔하고 필름은 직접 6칸씩 나누어 조심스레 앨범에 옮겨 담았다. 사진을 정리하다 문득 2021년도 절반 넘게 지났음을 발견했다. 아직 무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어느 여름날이었다.


필름 카메라는커녕 우연한 기회로 사용해 보는 폴라로이드 카메라 말고는 카메라를 손에 들어본 적도 없는 나였다. 그러던 올해 1월, 생일 선물로 필름 카메라를 받았다. 평소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했지만 실제 카메라, 그것도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함께 온 필름 하나는 잘못 장착해 셔터를 눌러보기도 전에 눈물을 머금고 버려야 했다. 다행히 여분의 필름은 실수하지 않고 장착했다. 괜히 한 번 확인하겠다고 기껏 잘 장착한 필름을 열어 빛을 잔뜩 쐬기 전까진 말이다. 일주일 후 새로 주문한 필름이 도착했고, 우여곡절 끝에 나의 필름 카메라 사용기가 시작되었다.


필름 카메라는 장 수가 제한되어 있고 한 번 찍은 사진은 지울 수도 없다 보니 특별한 순간들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도 신이 나서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다니다 보니 첫 번째 필름은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다 써 버리고 말았다. 부푼 마음으로 방문한 사진관에서 현상을 마친 결과물을 본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의 대부분은 너무 어두워 알아볼 수도 없었고, 일부는 빛에 너무 노출되어 있었다. 그렇게 실망만 가득한 채로 나의 첫 필름 통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실패한 사진

이렇듯 필름 카메라는 쓰기 귀찮고 번거롭다. 빛을 세심하게 신경 써서 찍어야 하는데 정작 어떻게 사진이 나올지는 모른다. 무엇보다 한 번 찍은 사진은 필름을 다 쓰고 사진관을 찾아가 현상하기 전까지 확인할 수 없다. 그런데 차츰 카메라에 익숙해지면서 필름의 진정한 묘미를 깨달았다. 특별한 순간을 기다리기보다는 일상의 한 장면에도 마음을 담아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완성된 두 번째 필름은 모든 사진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나의 일상, 나의 마음

그래서 나는 요즈음 이 귀찮음이 반갑다. 다른 사람들이 1분 동안 수십 장의 사진을 찍고 수십 장의 사진을 버릴 때, 나는 한 장의 사진에 내 마음을 담는다. 그렇기에 어느 날 현상한 필름에서 잠시 잊고 지낸 과거의 기억을 마주할 때면 더욱 반갑다.


문득 카메라 담는 마음이 너에게도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순간만이 아닌,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사람. 관성적으로 자주 만나지 않고 오랜만에 봐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 그만큼 더 애틋하고 보고 싶은 사람.


너와 나도 서로에게 그런 존재이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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