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책방이 사라졌습니다.
평소보다 산책을 오래 한 오늘에야 발견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동화책을, 학창 시절에는 문제집을.
이제는 20년 가까이 뵌 책방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들르던 책방이었습니다.
그런 책방이 사라졌다는 것을 오늘에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만나온 모든 사람들, 겪은 모든 경험들.
그 모든 삶의 흔적들은 각각의 생동하는 색채로서 제 안에 존재합니다.
하나의 흔적은 다른 흔적과 섞이지도, 교차하지도 않고 다만 오롯한 그 자체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하나 쌓이는 흔적들은 결국 ‘나’라는 한 폭의 점묘화를 완성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무감했나 봅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무심한 척 했나 봅니다.
때로는 저 멀리서, 때로는 너무 가까이에서만 ‘나’라는 그림을 바라보며
항상 그 자리에 함께 해 주었지만
익숙함이라는 이름만으로
잊은 줄도 모르고 잊어 온 모든 제 삶의 흔적들을 위해.
오늘 밤만큼은 그대들을 위해 보내고 싶습니다.
당분간 아주 먼 곳에 가게 될 것입니다.
밤새 걷는다면 언젠가는 돌아올 수 있겠지요.
갈 때에는 아주 어두워서 길이 잘 보이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돌아올 길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길은 반드시 존재하고, 달은 반드시 차오르기에.
하지만 아직은 돌아올 수 없습니다.
다만 언젠가 돌아오는 그날,
밝은 달이 우리의 길을 비추어 줄 그날.
우리네 길이 교차하는 그 자리에서
당신과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그때까지
당신도
나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