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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매거진> 아카이브
by 이십구 매거진 Sep 07. 2017

컬러가 살아 있는 가죽 제품

[ARCHIVE] 페넥 FENNEC


페넥은 부부 디자이너 오정희와 윤지영 실장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가죽 잡화 브랜드다. 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사막여우를 의미하는 ‘페넥(Fennec)’이라는 이름에는 모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좋은 제품을 제작하겠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시즌을 타지 않는 심플한 디자인, 기능성에 대한 충실한 고민과 품질 좋은 소재에 페넥만의 차별화된 컬러를 입혀나간다.



1990s


"음반 재킷을 보면서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오정희 실장은 대구의 평범한 주거 지역에서 성장했다. 디자인에 대한 인식도 공연이나 전시를 접할 기회도 거의 없던 시기였다. 빌라들이 밀집된 동네에서 통학하던 중학생 시절 어느 날 집 건너편에 작은 가게 하나가 들어선 것을 발견한다. 돌이켜보면 의외의 장소에 뜬금없이 나타난 레코드숍을 발견한 그 날 앞으로의 인생이 결정됐는지도 모른다.


“주인 형이 헤비메탈을 틀어놓고 손님 없는 가게를 혼자 지키던 기억이 나요. 처음 구입한 게 할로윈 앨범이었어요. 그때 듣던 메탈리카는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밴드고요. 스피드 메탈이나 메탈을 접목한 프로그레시브 록 음반을 사고 구경하다 보니 앨범 재킷을 디자인하거나 거기 사용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누군지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음악과 디자인, 예술에 흥미를 갖게 됐어요. 차차 일본 애니메이션과 패션에도 빠졌고요.”


의류 매장을 오래 운영하신 어머니의 영향으로 윤지영 실장은 자연스럽게 의상 디자이너를 꿈꾸며 자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옷과 디자인에 관심을 보였고 차근차근 의상학과 진학을 준비했다. 다양한 관심사를 경험하는 대신 조용하고 성실한 성격으로 꾸준히 한 길을 걸어온 셈이다.


“의상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제 꿈은 딱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제 브랜드로 런웨이에서 쇼를 선보이는 거였고 두 번째는 디자이너 남편을 만나서 둘이 함께 사업하는 거였죠. 남편과 함께 사업한다는 꿈을 먼저 이루게 될 줄은 몰랐어요. 언젠가 제 이름을 걸고 쇼를 하는 날도 올 거라고 믿어요.”



2000s


"마음에 드는 맥북 케이스를 찾을 수 없어서 직접 만들어 봤는데 상품성이 있겠더라고요."


구제 옷을 사 입고 여성 패션지를 탐독하던 사춘기를 거쳐 오정희 실장은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했다. 우연히 시각디자인 수업을 듣던 중 맥과 편집 디자인 툴에 매료되고 도쿄 여행에서는 한 티셔츠 숍에 들렀다가 매장 가득 그래픽이 프린트된 티셔츠가 걸려 있는 광경에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그는 패션 브랜드에서 티셔츠를 만드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2006년 한창 잘 나가던 남성복 브랜드에 들어가게 됐어요.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를 통해 일해보고 싶다고 장문의 쪽지를 세 번 보냈죠. 메일 주소도 몰랐거든요. 일주일 후 디자이너이자 대표님이 직접 전화하시더니 당장 내일 면접을 보러 오라는 거예요. 합격하고 한동안 거기서 일하다가 유니섹스 캐주얼 브랜드로 옮겼어요. 페넥을 구상하기 시작한 건 2~3년 지나 퇴사한 뒤부터고요.”


스타일 디자이너를 꿈꾸던 윤지영 실장은 한 캐주얼 브랜드 구인 공고에서 소재 디자이너라는 생소한 직종을 접하게 된다.


“스타일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소재 디자이너로 입사하게 됐어요. 그런데 막상 일해보니 소재가 재미있었어요. 같은 디자인의 옷이라도 소재와 컬러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이요. 캐주얼 브랜드는 다양한 소재를 시도해보는데 한계가 있다 보니 여성복 브랜드를 거쳐 남성복 브랜드까지 차례로 경험했죠. 남성복이 가장 의미 있는 경력이었어요.”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한창 경력을 쌓아나가던 시기 서로를 알게 된 그들은 취향을 공유하며 디자인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는다. 특히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던 오정희 실장이 페넥을 본격적으로 구상하던 무렵에는 모든 고민을 나누며 해결해나갔다.


“제가 물건 하나를 사도 엄청 시간을 들여서 사는 편이에요. 맥북 케이스가 필요한데 아무리 찾아도 마음에 드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만들고 말지 하고 하나 만들어봤거든요. 패셔너블할 것, 맥북을 잘 보호해줄 것, 기준은 딱 두 가지였는데 이게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상품성과 경쟁력이 있을 거 같았어요. 브랜드를 직접 운영해보기로 했죠. (오정희 실장)”


6개월간 고심 끝에 ‘페넥’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 뒤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는 귀가 크고 귀여운 ‘사막여우’ 이미지에 어울리는 동글동글한 폰트의 로고와 이를 확장한 심벌을 순식간에 완성했다.



2011 - 2012


"퀄리티가 같다면 하나를 비싸게 팔기보다 백 개를 저렴하게 파는 쪽이 낫다고 생각해요."


첫 제품은 물론 브랜드명보다도 먼저 만들어진 맥북 케이스였다. 워낙 애플 마니아였기에 두 번째로는 아이폰 케이스를 제작했다. 백팩과 지갑에도 차례로 욕심이 생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공장에 찾아가 무시당한 적도 있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원가가 파악됐다.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가격을 낮추는 요령도 터득했다. 세상의 많은 브랜드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품 브랜드 제품을 제조하는 국내 공장에 생산을 맡기고 있어요. 고품질 소가죽만 쓰고요. 좋은 제품을 비싸게 파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잖아요. 멋진 제품을 비싸게 팔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마케팅을 하지 않고 아예 이윤 자체를 적게 잡았죠. 주변에선 다들 이렇게 장사하면 망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퀄리티가 같다면 하나를 비싸게 팔기보다 백 개를 저렴하게 파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오정희 실장)”


모든 브랜드가 그렇듯 초반에는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공장에 사기를 당하고 큰 돈을 날리기도 했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알아줄 거라는 믿음 하나로 버텼다. 실제로 규모가 큰 오프라인 편집숍에 입점하게 되면서 제품의 퀄리티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아직 혼자서 디자인과 공장 관리부터 제품 포장, 재고 관리, 입고까지 도맡아 하던 시기였다. 회사에 다니던 윤지영 실장은 퇴근하면 곧바로 달려와 일을 도왔다.


다음 날 아침 매장이 오픈하기 전에 급하게 제품을 입고시켜야 했어요. 제가 제품을 패킹한다고 밤늦게까지 붙잡고 있으니까 윤 실장이 와서 아무 말 없이 도와주더라고요. 본인도 야근으로 피곤했을 텐데요. (오정희 실장)



2013 - 2016


"시즌마다 기존 제품에 새로운 색을 추가하는 콘셉트를 고수하고 있어요."


묵묵히 응원하던 윤지영 실장이 페넥에 합류한 것은 2013년이다. 오정희 실장이 지속적으로 설득해오기도 했지만 때마침 대기업에서 소재 디자이너로서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적어도 아직 한국에서는 소재 디자이너가 스타일 디자이너를 뒷받침하는 역할로 여겨지는 현실 때문이었다.


전반적인 디자인은 오정희 실장이, 컬러 제안은 윤지영 실장이 주도하는 체제가 확립됐다. 그리고 페넥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첫 번째 제품이 탄생했다. 초기작이자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반지갑 ‘페넥 지퍼 월렛(Fennec Zipper Wallet)’ 와인 컬러다.


“사실 오 실장님은 반대했어요. 칙칙하다고. 이전에는 블랙, 오렌지, 그린 세 가지 색만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고집했어요. 당시 와인 컬러가 의류 쪽에서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할 때라 지갑에 꼭 적용해보고 싶었거든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색이기도 하고요. 실제로 출시하자마자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지갑 시장에는 없었지만 너무 어둡지도 튀지도 않으면서 무난한 색이니까요. (윤지영 실장)”



그다음 히트작은 2015년 같은 시리즈의 라이트 핑크, 라이트 바이올렛 컬러. 지갑은 손에 자주 닿는 만큼 때가 타기 쉬운 제품이라 파스텔톤을 떠올리긴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소비자 반응은 뜨거웠다. 온갖 카피 제품이 쏟아졌다. 의류 브랜드처럼 시즌별 신상품을 출시하지는 않지만 S/S, F/W 시즌마다 기존 제품에 새로운 색을 추가하는 콘셉트가 정해졌다.


“1년에 6~7가지 색이 나와요. 모든 컬러가 다 성공적인 건 아니지만 그 콘셉트를 고수하려고 해요. 똑같은 컬러라도 옷에 쓰일 때와 지갑에 대입할 때가 달라서 고민하게 되는데 그 결과가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과 맞아떨어지는 순간 보람을 느끼죠. 와인 컬러와 라이트 핑크, 라이트 바이올렛이 팔리는 걸 보고 저희도 깜짝 놀랐어요. 사람들이 이미 무난한 컬러는 갖고 있거나 오래 써봐서인지 ‘페넥에서는 경쾌한 컬러 제품을 구입할 수 있어서 좋다’고 인식하는 거 같아요. (윤지영 실장)”




2017


"‘컬러를 연구하는 집단이자 스튜디오’로서 페넥만이 제안할 수 있는 컬러를 계속 선보이려고 해요."


올해는 페넥에게 있어 여러 가지로 변화와 도약의 시기다. 우선 첫 핸드백인 ‘모스트백(Most Bag)’이 나왔다. 두 실장은 ‘특징이 없는 것이 이 백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트렌드에 상관없고 어떤 스타일의 옷에도 맞춰 입을 수 있는 백을 추구하다 보니 거의 모든 디자인 요소를 배제했다. 로고도 뒤쪽으로 숨겼다. 단 한 가지 고집한 것은 ‘투웨이 핸들’ 스트랩이다. 독특하게 고정된 긴 스트랩의 길이를 손쉽게 조절해 숄더백이나 크로스백, 토트백 등으로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다.


“페넥에 대한 인상이 쉽게 말해 ‘지갑을 싸게 잘 만드는 브랜드’잖아요. 그런 데서 핸드백을 만들면 사람들이 과연 믿고 살까 걱정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판매율이 꽤 높더라고요. 모스트백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가 좀 달라지고 있는 거 같아요. (윤지영 실장)”



최근 도쿄플라자를 비롯해 일본 내의 다양한 장소에서 팝업스토어를 오픈하고 있다. 작년부터 일본 진출을 시작한 페넥은 현재 도큐핸즈 매장에도 정식 입점해 있다. 조만간 중국, 대만, 홍콩에 이어 동남아시아까지 아시아권으로 유통망을 확대할 계획이다. 해외 배송 문의 중 이미 상당수가 동남아시아 고객이다.


“한국 대표 잡화 브랜드이자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오래된 브랜드가 별로 없잖아요. 기반을 차곡차곡 다지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게 목표예요. 클래식한 디자인, 기본적인 아이템에 다채로운 컬러를 입히는 쪽으로 천천히 정체성을 완성해나가려고요. ‘지갑의 끝’을 보여주겠다는 욕심이 있어요. (오정희 실장)”


다가오는 11월에는 성수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한다. 4층짜리 사옥에 첫 직영 매장을 선보일 예정이다. 퀄리티와 가격이 안정화됐으니 본격적인 브랜딩에 집중할 시기다. 6년이 지난 지금 알게 된 사실은 고객들이 ‘페넥’ 하면 컬러를 떠올린다는 것. 컬러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리뉴얼하면서 색 구현이 중요한 페인트 브랜드, 문구 브랜드 등과의 콜라보레이션을 구상 중이다. ‘컬러를 연구하는 집단이자 스튜디오’로서 페넥만이 제안할 수 있는 컬러를 계속 보여주기 위해서.




HISTORY


2011

페넥 론칭,

29CM 입점


2015

쇼룸 오픈


2016

일본 진출


2017

첫 직영 매장 오픈 예정



INFORMATION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42길 31-4

T 070-8899-4502

H www.fennec.co.kr

I @fennecseoul



페넥 FENNEC 브랜드샵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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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렉터 ㅣ 김나나

에디터 ㅣ 강경민

사진 ㅣ 고은혜

디자인 ㅣ 최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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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Magazine>
29CM에서 발행하는 컬처 &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www.29c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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