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무너지는 시대, 인간은 어디에 머물 수 있을까

by NHJ

사람들은 요즘 말한다.
“우리 애들은 뭘 먹고살까?”
“AI 시대엔 어떤 직업이 유망할까?”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런 질문이 의미없다고 느낀다.
그건 이전 시대의, AI가 인간의 시간을 의미없게 만들기 이전의 프레임 속에서 답을 찾으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앞으로의 세계는 우리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곳이라,
예전 방식의 질문으로는 더 이상 유효한 답을 얻을 수 없다.


그것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한다.



시간의 가치가 부정되는 세상이 도래했다.


변호사로서의 삶을 시작하기 이전, 학창시절의 나는 작곡을 전공하려고 했었다. 그 당시 나름의 재능과 열정이 있었고, 많은 곡을 작곡하고 그 곡들을 연주하기 위한 피아노 실력도 있었다. 얼마 전, 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즉흥 연주를 해봤다. 감성은 살아 있었지만, 기술이 받쳐주지 않아 어설펐다.


'AI로 연주해도 이 정도는, 아니 이것보다 잘할텐데'하며 헛웃음이 났다. 그리고 순간 공포가 밀려왔다.


이제 우리 모두는 AI가 인간과 비슷하거나 어떤 분야에 있어서 더 빠르고 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AI와 비교대상인 인간은 어떤 인간인가?


어느 정도의 고등교육을 마친 숙련된 인간이다. 태어나서 언어를 배우고,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교육을 받고, 대학을 졸업해야 비로소 AI와 비교가 가능한 수준의 지능을 갖추게 된다. 작곡은 어떠한가? 작곡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베이스가 되는 악기 연주능력을 갖추는데만 몇 년이 걸린다. 그 이후에서야 작곡의 기본기를 몇 년에 걸쳐 배우게 된다.


AI는 인간이 수십 년을 들여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몇 초 만에 건너뛴다. 시간이, 그리고 그것을 쌓아가는 과정이 무력화되는 세상이 다가왔다.


내가 느낀 공포의 이유는 단순히 "AI가 인간보다 잘한다"는 비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느낀 공포는 시간의 가치, 그리고 노력의 의미가 사라지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시간으로 자신을 증명해왔다.


태어나 언어를 배우고, 작곡을 배우고, 그림을 배우며,

수십 년의 시간을 투자해 ‘어떤 사람이 되는가’를 만들어왔다.

지금까지 인간 사회는 "1만시간의 법칙"과 같이,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능력이 쌓이고, 그 능력은 가치가 환산된다는 합리적인 믿음이 통용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AI는 이 모든 과정을 건너뛴다.


인간의 노력은 더 이상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 시대에 접어들고, 노력은 존중받을 가치가 아닌 비효율의 증거로 간주될 위험이 커지게 된다. 배우고 실패하고 나아가는 인간의 성장 서사의 가치는 추락한다.



시간으로부터 자유, 인간의 새로운 진화


그럼에도 공포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르게 생각해본다.


이것은 오히려 인간에게 새로운 차원의 자유를 선사하는 것이라고.


전통적으로 인간의 삶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평가되어 왔다. 청소년기에는 학업을, 청년기에는 취업을, 이후에는 결혼을, 육아를, 내집장만을, 일정 나이가 되면 정년이 되어 퇴직을 한다. 모든 단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획되고 평가되고 이러한 구조 속에서 시간은 의무였고, 책임이었고, 심판자가 된다.


그리고 시간은 효율적으로 써야만 하는 한정적인 자원이 된다. “최연소합격자”와 같은 남보다 빠른 삶은 추앙받는다.


“너는 왜 아직 이걸 못했어?” “이 나이에 이정도는 해야지” “시간을 허비하지마라”


그러나 이제 AI로 인해 시간의 가치는 하락하고, AI는 인간을 시간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새로운 진화에 접어들게 한다.


인간은 이제 시간에 끌려가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을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효율성이나 생산성이 아닌 경험과 의미로 바꿀 수 있게 된다. 그 한켠에 감각이 있다.



공간의 붕괴, 감각적 밀도


시간의 붕괴에 대해 얘기했지만, 공간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 어디에 있는지보다 어떤 접속상태에 있는지가 더 중요한 세상이다.


그러나 공간이 무너져도 감각은 현실을 만든다. 디지털 세계에서 공간은 가짜일 수 있어도 감각은 여전히 진짜이다. 가상 현실에서 파리의 에펠탑을 보는 것과 실제로 그곳에 가서 느끼는 감각은 다르다. 감각의 밀도가 다른 것이다.


완벽한 감각의 추구는 현실에 있다. 현실의 감각을 대체하는 완벽한 모조품은 없다. 완벽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어떤 나라의 왕이 있었다고 한다. 만들어진 완벽한 지도는 점점 커져 결국 영토 전부를 덮게 되었다고 한다.


세계가 디지털 세상으로 연결되어 있어도 사람들은 여행을 간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음으로 인해 되살아나는 감각들. 뇌는 익숙하지 않은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살아난다.


요즘 세상은 정보의 밀도는 넘쳐나는데, 정작 감각의 밀도는 다 말라간다.
터치스크린, 이어폰, 냄새 없는 공간, 일정한 온도, 필터 씌운 얼굴들...
너무 매끈해서 아무것도 못 느끼는 상태가 점점 일상이 되어간다.


우리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진짜 감각에 대한 목마름을 느끼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성장'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세상에서,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살아있다는 감각을 더욱 절실하게 찾을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세계를 계속해서 탐구한다


우리는 어떻게 살게 될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며, 나는 앞으로의 세계를 탐구해 나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