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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Mar 18. 2023

외로움에 대하여

외로움, 친구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다.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기대를 안 한다. 가깝다고 생각하면 그 가까움의 거리가 더 가까울수록 기대가 크다. 거리를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어느 날 갑자기 그간의 쌓아온 정과 신뢰를 와장창 깨버리는 한마디를 들었을 때, 시간이 가도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면서 그 이전의 그 온정을 되찾고 싶어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려고 하여도 되돌릴 수 없게 된다. 그런 일들이 딱 한 사람과만 생기는 게 아니다. 급하거나 간절한 일이 있을 때 그 사람의 본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세월이 겹겹이 쌓이다 보면 우정이나 애정이 겹겹이 쌓이길 원하는 만큼 서운한 일들이 쌓이게 되고 우정이나 애정에 대한 바람은 바람일 뿐이라는 걸 확인하면서 '아, 혼자였었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현재의 외로움과 앞으로의 외로움에 대해 원인이 뭘까를 생각하면 뭐 쉽게들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모든 일의 원인은 알고 보면 본인에게서부터 출발한다는 의미에서는 틀린 말은 아니다. 운전을 비교해서 생각하면 또 모든 원인이 꼭 본인의 책임이라고 일축할 수만 없다.


  면밀히 들여다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결과물인 '사랑'이 없어서 '용서'를 못해주니 생기는 결과물이 '외로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애정과 반비례한 상대의 애정에 대해 성자가 아닌 이상 쉽게 '용서'도 안되고 관대해지기 쉽지 않다. 그냥 나 홀로 외로움에 몸서리치다가 고뇌의 시간을 거쳐 그냥 떠나보내는 걸 선택한다. 일방의 선택이 아니다. 서로의 선택이다. 구질구질하게 '화해'니 '용서'니 하는 더 이상의 '협상?'을 원치 않는다. 속 깊은 어느 곳에 꿈틀거리는 노력의 결과에 대한 걱정을 감지하여 스스로 멈춤을 선택한다. 노력하였으나 더 큰 실망이 돌아올 것을 걱정하여 그냥 멈추는 것이다. 그 과정의 결과물이 '외로움'이다.


  따지고 보면 '맹목적 사랑'이 아니고서야 서로의 관계에서 생기는 '외로움'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원인이 나든 너든 우리는 서로 '맹목적 사랑'을 하는 관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부질없는 기대 속에서 '서운하다, 네가 그럴 줄 몰랐다.' 하소연하면서 깊은 한숨을 쉴 일이 아니었다. 세상에 '맹목적 사랑'의 관계는 부모 자식의 관계 외에는 존재하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는 만큼 받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와는 달리 줘도 또 주고 싶은 유일한 관계가 부모자식 간의 관계뿐인 것 같다.


  이미 정해진 진리 같은 '사랑'이라는 한계로 인한 결과물이 '외로움'인 것을 우리는 어리석게 심한 갈증을 느낀다. 뻔한 답을 알면서도 부질없이 노력하게 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또 한다. 내 외로움의 정체를 눈치채고서야 스스로 뒷걸음질 치면서 긴 한숨으로 멈춤을 선택한다. 어느새 내 가슴속 깊이 점령한 외로움을 우리는 그리움으로 달래면서 살아낸다. 서운함이랄까 외로움이라고 깨닫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 시간들을 우리는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면서 내 외로움을 다독이면서 남은 시간들을 보낸다.


  간혹 외로움이란 걸 감당하기 힘들어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도 있다. 죽음이라는 무거움을 쉽게들 '고독사'라는 표현으로 갈무리하곤 한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다가 해결 방법을 찾다가 찾다가 찾지 못하고 멈추는 상태가 죽음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사랑을 주고 또 주고 그래야 생명이 연명되는 것 같다. 주고 또 주고 싶은 그 줄 곳을 찾지 못하여 헤매고 또 헤맨다. 순수하게 끝없이 받아주는 곳 그곳을 원하는데 그곳을 찾기가 힘들다.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나를 객체화시켜서 내가 나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끊임없이 사랑하면 될 일이다.


  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생명이 다할 때까지 넌 내 친구야'라고 생각했던, 언젠가 그 친구의 마음을 눈치채버렸던 시간부터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난 아직도 나만 친구라고 생각하는 내 친구를 나는 사랑한다. 서운하다. 그럴 줄 몰랐다. 네가. 그래도 난 계속 어리석고 말 것이다. 너를 친구라고 생각하면서. 너도 약간 서운해 할 수도 있다. 이제 너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네가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기보다 나도 내가 사랑할 것이니까. 나 혼자 긴 시간 만지작거린 내 외로움에 대생각 하면서도 억지로라도 정리하면서도 난 네가 나처럼 우리의 우정을 귀하게  생각해 주길 바란다. 우리의 우정이 외로움의 다리로 건너가기를 원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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