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long Mar 27. 2023

성장 그리고 성숙

성숙함

 요즘 텃밭 사랑에 푹 빠졌다. 지난해 처음으로 양파를 심어서 오백 원짜리 크기의 양파를 수확하고 두 번째로 심은 양파가 제법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서 비가 내린 후엔 복합 비료도 뿌리고 깻묵 썩힌거름도 뿌리고 풀도 뽑고 준 농사꾼 노릇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침 일찍 밭엘 갔더니 비둘기 떼가 족히 삼십 마리는 넘게 이웃밭의 양파밭에서 설썩은 깻묵을 주워 먹고 있었다. 내가 나타나자 바다의 해일이 훅하고 일어나듯 비둘기 떼가 날아갔다. 농사를 짓다 보면 정작 맘먹고 제배하거나 정성을 들인 작물은 거의 다 인근 산에 사는 야생동물들의 밥이 되고 자생적으로 자란 쑥 냉이 머위 등을 채취하여 먹는 경우가 더 솔솔 하다.


  워낙 작은 것에 심하게 감동해 버리는 경우라서일까 새싹이 새록새록 돋고 꽃들도 피고 텃밭 주변의 변화무쌍함을 날마다 날마다 볼 수 있는 건 농작물을 경작하여 얻은 수확보다 더 큰 수확을 얻는 기분이다.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의 성장과정은 보는 이를 감동하게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자연이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사람들과 부대끼며 이런저런 상처를 받고 치유되기도 전에 또 상처를 받고 철철 피를 흘리다가 어느 때는 공기처럼 되고 싶어지곤 하면서 세월을 뒤로 밀고 또 밀어내면서 살아낸다.


  그냥 살아도 될 텐데  왜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내면서 살까? 맑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상처를 주고 하물며 죄 없는 그 사람에게 "그럴만한 짓을 했으니 그런 일을 당했겠지."라고 이중 삼중의 깊은 상처를 주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다른 살아있는 생물들도 우리들처럼 그렇게 처절하게 살아갈까?


  나이 어릴 적엔 경험이 부족하여 좌충우돌하다 보면 찰과상도 입고 뼈도 부러지고 이런저런 상처도 입고 그렇게 살아가면서 '어리니까 그러겠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이겨낸다. 그러면서 막연히 제대로 어른이 되면 '뭐 별일 없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어느 구간쯤엔 무릉도원이라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 속에서 살아간다.


  어쩌나, 지금쯤이면 그 무릉도원이 나올 법도 한데 글쎄, 이렇게 황량한 사막 같은 곳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멋모르고 살던 그때가 대려 그리울 줄이야?! 울고 웃고 하더라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래도 진한 애정으로 찰지고 끈끈하게 금세 하나가 되곤 했었다. 더 진하게 더 따뜻하게 살 거라고 기대했던 시기가 된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나이가 들어서 그냥 작은 자극에도 심하게 시리고 아프다. 서운한 일이 생기면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애써보았었는데 지금은 '그래, 그럼 그렇게들 살아라.'라는 마음으로 찰기 없는 왕모래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상처는 큰 흉터가 되어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한때는 아웅다웅 싸우고 하는 걸 보면서 '뭘 저렇게 까지 저러나?, 천년만년 살 것처럼 왜들 저러나?'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지금에 와서 별 걸 다 이해하게 되면서 '싸움도 애정이 있어야 싸운다.'는 말까지 깊이 이해하게 되어버렸다.


  전의를 상실한 장수가 되어버렸다. 사랑이니 안 사랑이니 하면서 누구 하고나 하나가 되려고 애쓰고 또 애썼던 시간들이 있었다.  철철 흘리다 보면 진한 전우애라도 생길 줄 알았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인간은 지극히 독립이면서 개인적인 존재였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뒤늦은 깨우침인지는 모르겠지만 삶이란 걸 영위해 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도움이 필요한 거지 정서적으로 일치한다거나 정신적으로 하나가 된다거나 뭐 그런 일은 기대 자체를 시작부터 하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울타리 속에 함께하기 위해서 상처를 받으면서까지도 이겨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던 게 오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충분히 '나' 자체로 헤쳐나가야 했었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함을 목표로 살아냈었어야 했었다. 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 결혼은 각자 스스로를 건사할 수 있을 때 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을 하듯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정서적인 면까지 독립적인 내가 되고 서로의 관계를 엮으면서 살려고 했어야 했다.   


  조금은 건조하고 삭막한 사막을 느끼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으로서의 본인의 위치를 점검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한 방향 설정을 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답은 스스로의 마음속에 있는 줄 알면서도 걷고 또 걷고 묻고 또 묻고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자꾸 누군가에게 기대하면서 기대려고 했던 나약함을 쉽게 떨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전 기능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라는 걸 내가 인정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애초에 전 기능을 할 수 있게 사람을 빚었다. 아마도 정서적인 면까지도 자가발전이 가능하게 만들어져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모르고 자꾸 주변에서 나를 찾으려 했었다. 그래서 외롭다. 사막을 느낀다. 뭐 그런 류의 생각에 쌓여 있었다. 마음처럼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라도 스스로를 잘 정리하고 점검해서 제대로 늙을 준비를 해야겠다. 빛나는 왕 모래가 되어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다 꺼낼 수만도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