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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Mar 29. 2023

마음단속

노화

  환자가 처음 병을 알게 되었을 때 별 큰 병이 아니면 별 문제도 아니지만 큰 병에 걸렸을 때는 부인하는 게 보통의 경우라고 들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아닐 거라고, 다시 검사해 보자고. 병과 무관하게 사노라면 원치 않게 부정하고 싶은 많은 일들을 겪고 산다.


  젊은 나이에도 그 나름대로 힘들고 지치고 때론 빨리 나이가 들어버렸으면 좋겠고 뭐 다양한 마음이 들곤 한다. 그런데 막상 늙으면 또 묘하게 약해지기 시작한다. 떠올리기 싫지만 '사람은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도 있는 걸 보면 그 어린애가 된다는 말의 시작점이 지금이 아닌가 싶어 진다. 


  한참 자식의 성장을 위해 발로든 마음으로든 뛰고 또 뛸 때는 철갑을 두른 장수처럼 단단하기만 했었다. 그런 시기가 지나고 나니 스스로가 이렇게도 나약한 사람이었는지 믿기지가 않는다. 기억하고 싶지 않게 아팠었던 때와 유사한 환경에 처하게 되면 미리 걱정하게 되고 별일도 아닌데도 시리고 아프고 영 감당이 안된다.

 

  예전에 심하게 마음을 다친 적이 있었다. 홀로 전쟁 같은 시간을 이겨내느라 많이 힘들었었다. 그때 많이 힘들게 했던 사람과 비슷한 성격과 태도를 갖은 사람이 나타났다. 더 지켜봐야겠지만 아직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일어날 것처럼 걱정하다가 이런저런 대처법을 생각해내곤 했다. '웃고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등등. 하지도 못할 말들을 미리 생각해 보고 걱정하고 또 걱정하는 어이없는 내 모습에 안타까워한다.  


  누구나 그러겠지만 난 누구도 아프게 하거나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이 나이가 되도록 물러터져서 있지도 하지도 않은 일로 우격다짐식의 성깔을 들어내면 난 또 내가 무슨 죄나 지은 것처럼 흠뻑 당하고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겠지.' 하면서 혼자 아파하고 또 아파하면서 이겨내려고 한다. 그런 나를 나는 안다. 그래서 그럴 여지가 있으면 미리 걱정하곤 한다. 이제는 같은 일을 겪고 싶지 않은 간절한 마음으로 삼월을 보내고 있다.


  기껏 하지도 못할 말을 생각해 내면서 무슨 해결책이라도 찾은 것처럼 어린아이가 한 단어 두 단어 말을 시작하듯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연습을 해본다. 상대에게 "어떻게 해주세요."라고 말하기보다 나를 아프게 하면 "그렇게 하면 제가 많이 아픕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언젠가 들었던 '나 대화법'으로 의사를 분명히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끙끙 아파하면서 아무 말도 못 할게 뻔한데 못난 나는 이런저런 살기 위한 대응책을 생각해 보곤 하면서 한숨을 들이쉰다.


  이제는 더 이상 힘든 일을 겪고 싶지 않다. 버틸 만큼 젊지도 않다. 그렇다고 곰 같은 성격이 여우 같은 성격으로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아프고 말지 일을 크게 만들고도 싶지 않고 더 커지면 더 힘들까 봐 그게 걱정인 사람이 쉽게 변하겠는가? 별수 없이 그냥 이겨내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싶다.


   외롭고 아프고 늙어가는 사람들은 다 그럴까? 그냥 외롭고 작은 것에도 겁먹고 서운하고 아프고 그런 감정만 활성화되는 게 노화의 과정일까? 다른 사람들의 감정은 다 모르겠지만 적어도 난 그런 과정의 초기가 시작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스스로 변화를 감지하고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외로움에 대하여는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거나 의존적인 감정을 갖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내 몫을 하면 되는 거지 그러했기에 상대도 내게 그만큼은 해주겠지 하는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작은 자극에도 심하게 시리고 아픈 건 육신의 늙음이 마음까지 변화하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기상예보를 듣고 피해 예방을 위해 준비하고 단속하듯이 노화인지 뭔지 원인 모를 심리적인 변화에 대해 준비가 필요한 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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