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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Apr 06. 2023

시간이 없다는 말

마음

  "오랜만에 비가 내리네요?"

"비가 내리니까 시상이 떠오르시나요?"

"와유, 그럴 시간이 없어요."

글을 쓰는 걸 지도하는 분과 방금 나눈 대화다.

목마른 대지에 정말 생명수 같은 비가 내린다.

어느 지역에 호우 경보, 호우 주의보 하며 개표방송할 때처럼 지명과 함께 방송되고 있다.

비를 많이 반기는 또 다른 모습이다.

저수율을 알리고 가뭄 극복 방법을 안내하는  안전 안내 문자가 이번 비로 인해 멈출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산불이 났다는 산림청 안내도 이번 비로 멈출 수 있기를 바란다.


  비가 대지를 적시는데 큰 공헌을 하듯 우리들의 마음도 촉촉이 적셔주기를 기대해 본다.


  오랜 시간 비가 내리지 않으면 건조주의보가 내린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건조하게 만드는 건 뭘까?

여러 원인들 중에 '빨리'가 몸에 배어 있는 조급증, 그 마음을 해결하기 위해 바쁘고 시간이 없기가 일쑤다.

 '시간이 없다.'는 실제로 '바쁘다.'는 다른 표현이기도 하지만 듣기에 따라 '관심이 없다.' 그리고 '사랑이 없다.'는 속뜻을 가지고 있다.

 대놓고 "네게 관심이 없어." 또는 "널 사랑하지 않아."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응, 미안해.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대답한다.

별거 아닌 일에도 그 사람은 거기에 있다. 그러나 내가 간절히 부탁했던 일은 시간이 없다고 답했다.

뭔가를 부탁하기 전까지는 별이라도 달이라도 다 따줄 것처럼 말하곤 했던 사람이 정작 소소한 부탁에는 시간이 없다고 답했다. 내내 모르고 살았을 텐데 '시간이 없다.'는 그 말의 속뜻을 눈치채 버린다.

나를 향한 마음이 평상시에도 건조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비로소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다.

대지도 내 마음도 봄비를 기다렸다.


  포장은 내용물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유도제 역할을 한다.

'시간이 없다.'라는 표현도 때론 같은 역할을 하곤 한다.

듣는 사람에게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바쁘다고 이해해버리게 하는 포장지가 되어준다.

듣는 사람도 당장은 나쁘지 않다.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바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주워졌는데도 청했던 일에 대해 무반응인 걸 확인하면서 서운함이 서서히 증폭되기 시작한다.

그와 상반되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다.

직접적인 부탁이라기보다 어떤 새로운 사실을 알리면서 그냥 공감해 주기를 바랐는데 통화하던 중에 행동으로 실천해 주는 분이 있었다. 큰 부담이 되는 일이 아니라 가볍게 말했었는데 빠르게 반응해 준 그분은 내게 오래 기억되고도 남을 만큼의 감동을 주었다. 속도로.


  한 번 사는 인생, 충분히 나도 누군가에게 감동이 될 수 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빨리 반응해 주면 그걸로 충분한 관심 또는 사랑을 느끼게 한다.

'시간이 없다.'라는 무관심 보다 더한 오묘한 포장지를 쓰고 사는 건, 상대를 실망시키는 것보다 더한 본인을 귀하게 만들지 못하는 역할을 한다.

누군가에게 꽃이 되고 싶다면 그가 나를 불렀을 때, "시간이 없다."라고 말하지 마라.

누구보다 빨리 반응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에게 '감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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