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의 백미는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어려운 업무가 완벽하게 마무리될 때 또한 짜릿한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점심은 날마다 오고 서로 인간적인 교감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그 시간이 짧지만 마냥 좋다. 이런저런 짤막한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까르륵 웃고 하는 게 점심시간의 풍경이다. 날로 날로 비대해져가고 있는 나는 걱정도 되지만 딱히 애쓰지도 않으면서 자랑거리라도 되는 양 "난 요즘도 성장해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건강 관련 일을 하는 분이 "늙어도 성장호르몬이 분비되죠." 이렇게 다큐로 받았다.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옆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에요.^^"라고 말했다.
'성장?'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마음일까 싶다. 나이가 들면 좀 많이 달라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신체적인 부문에서는 퇴보하는 게 눈에 띄게 보이고 그렇다고 정신적인 부문에서 탁월한 성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어릴 적엔 나름의 성장이 있었다. 신체의 성장은 당연한 거지만 정서적인 면에서 상당히 성숙한 면면이 있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난감한 상황이 생기면 그냥 두고 넘어가 버리기까지 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장의 변화를 쉽게 설명하자면 거의 삼각형에 가깝다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다. 스스로 상당히 당황스러울 정도다.
오십 대 중반인 현재까지 주기별로 살펴보면 나의 십 대는 참 모든 면에서 소 나 곰 같았다. 뭐가 되었든 하라고 하면 꼭 해야만 되는 줄 알고 불평불만이 뭔지도 모르고 묵묵히 했었다. 우리 집이 큰집인 데다가 할머니와 함께 살아서 사촌들은 물론이고 삼촌들이 자주 오시곤 하여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차분히 잘 들어주고 어른들을 다독이듯이 대하면서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을 하였었다. 실생활에서도 온몸으로 느끼고 내 일처럼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책 속에 나오는 많은 일들도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받아들였었고 그때는 철학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다. 내가 나를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고 뭐가 되었든 너무 심하게 주관화 했었던 시간을 보냈었다.
반면에 지금은 주관적으로 내 일처럼 생각하기보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여 나의 문제인가 아니면 상대방의 문제인가 분석하여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객관화시켜서 나로 인한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이 서면 그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나를 분리시키려는 노력을 하곤 한다.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이해시키려고 애쓰고 하였던 일들도 이제는 '그래, 알았다. 그럼 그렇게 생각하렴.'하고 마침표를 조기에 찍어버린다. 힘에 부치는 건지, 누적된 데이터로 별 소득을 기대하기 어려워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다 놓아버리는 나를 보곤 한다. 찰흙 같았던 마음에서 그냥 모래로 살련다를 취하는 것 같아 보인다.
이렇게 사람들로부터 나를 분리시키고 세상으로부터도 나를 분리시키면서 이 세상을 하직하는 수순을 밟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잘 살아보려고 버둥거렸듯이 이제는 잘 죽는 것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겁쟁이인 내가 과감하게 '죽음'이란 단어를 언급하다니 놀랍다. '죽음', 삶의 무덤인가?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런저런 꿈과 희망들이 있었더라도 중병에 걸리면 딱 하나의 소망으로 통합되어 버린다. '오래 살고 싶다.'라는 소망으로. 누군가를 설득하려 하고 이해시키려고 하는 행위를 놓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예고된 아픔을 피하는 걸까? 아니면 아등바등 살려고 했던 삶에 대한 포기 선언일까? 삶에 대한 성의 없는 행동이 아닌가? 하는 쪽이 더 가깝다는 판단을 한다. 그래서 결국 나이가 들었는데 이게 뭔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 뭐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다.
삶의 주기별로 스스로를 점검할 때 성장보다 퇴보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까지 한다는 건 참혹한 마음까지 든다. 넓어지고 깊어지고 따뜻해지고 싶다. 나이 든 내가 어린 나를 대견스러워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나였다는 생각을 한다. 특별한 노력도 없이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동화 같은 꿈은 꾸지도 않는다. 그저 어린 나 보다 늙은 내가 더 멋있길 바란다. 그런 막연한 바람은 있으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모르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내 모습만 보이니까 눈을 꼭 감아버린다. 육체의 노화에 질세라 정신도 늙어만 간다. 삶은 유한하기에 더 가치 있게 살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어디쯤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대체로 백세 근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예측은 가능하다. 더 이상 어리석지 않으려고 애써보고 적어도 어제의 나보다 오늘 그리고 내일의 내 모습에 흡족해하는 내가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