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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May 07. 2023

자식

자식, 엄마

  요즘 '나쁜 엄마'라는 드라마를 본다. 남편은 억울하게 죽고 유복자인 아들을 낳아 기르는 엄마를 그린 내용이다. 억울한 남편의 죽음을 겪고 아들을 법조인으로 길러 억울한 이들을 돕는 사람으로 살게 하려는 게 이 엄마의 삶의 방향이다. 아들은 공부하는 로봇으로 살았고 법조인이 되었다. 억울한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과는 달리 아들은 유혹의 손길에 하수인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악당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될뻔한 상황에서 7세아의 두뇌를 갖은 사람으로 겨우 목숨을 유지하게 되었다.


  하느님은 '내가 바빠서 어머니를 보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 말이 있다. 엄마는 피와 살과 모든 것을 주었다. 주고 또 주면서 무얼 줘야 할까를 늘 생각하면서 산다. 그러다가 어느 때가 되면 '고기를 주기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라는 말을 실천하려고 한다. 훌륭한 자식이 되길 원한다면 엄히 가르치라는 말이 있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려다 보면 쉽지가 않다. 그 과정은 엄할 수밖에 없다. 엄한 과정을 가다 보면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 마도 엄하고 싶지 않지만 엄히 대해야 한다는 것을 실천하기는 더 쉽지가 않다. '엄마는 이 세상 누구보다 너를 사랑한다. 그 사실을 알면 이 엄히 대하는 엄마를 이해해 줄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그 과정을 겪어낸다.


  처음으로 우리 셋째를 벌을 주던 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우리 셋째는 어마어마하게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다. 잘못하여, 그러면 안 된다는 걸 가르치기 위해 설명하고 두 손을 들게 했다. 두 손을 들자마자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얼른 뒤로 돌았다. 너무 귀여워서 사랑스럽고 귀여운 셋째를 와락 안아버릴 것만 같아서 그 마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내 마음을 들킬까 봐 얼른 뒤로 돌 수밖에 없었다.


  우리 둘째는 아주 어려서부터 남달리 어질고 배려심이 넓어서 아이가 아니라 마치 '聖者'가 태어난 게 아닌가 싶었다. 어느 날 "엄마가 널 더럽혔지 않았나 싶다."라고 말했더니 "아니에요, 세상밖에서 살다 보니 더 더럽혔어야 했어요."라고 말해서 걱정하는 날 덜 미안하게 했다.


  첫째는 총명하고 의욕적이었다. 말끝마다 "네, 엄마!"라고 답하곤 했던 게 생생하다. 너무나 의욕적이고 에너지가 넘쳐서 "다른 일도 많고 그 일을 잘하려면 이제 더 이상 다른 건 그만하는 게 어떨까?"라는 말을 할 정도로 뭐든 하고자 했다. 하고자 하는 일을 잘할 수 있으려면 엄마인 내가 큰아이를 위해 뭘 해야 될까를 생각하면서 행동했다. 그리고 큰아이가 흘리는 말로 한 말도 얼른 행동으로 옮겼었다. 지금도 그 습관이 몸에 배어 어느 날 본인 화분을 보며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야 될 텐데."라고 말했다. 그걸 기억하여 난 분갈이를 해놓았다. "예전에 우리 집에 천리향이 있었는데, 향이 참 좋았었는데."라고 말하는 걸 기억하여 금세 천리향 두 그루를 사서 심었다. 그러나 큰아이는 그놈의 공부가 뭐라고 많이 절제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엄한 엄마 등살에 더 힘들었다는 걸 난 안다. 그래서 늘 미안해했지만 지금쯤은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길 바란다.

 

  사노라면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걸 깨닫기가 쉽지만도 않다. 나는 나의 엄마를 존경한다. 다른 자매들은 욕쟁이 할멈 같은 엄마를 엄마니까 사랑하는 건 이해하지만 존경까지 한다는  낯설어한다. 그럼에도 난 우리 엄마의 면면을 존경한다. 지난주 우리 다섯 식구가 한 차에 타서 이동 중이었다. 큰아이가 "엄마도 엄했지만 할머니도 좀 그랬잖아요."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큰아이를 비롯해 세 아이 모두에게 "엄마는 할머니를 존경한다. 세상 그 어느 누구도 할머니처럼 그렇게 묵묵히 무거운 짐을 본인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소리 없이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밖으로 표현되는 시끄러운 목소리는 백분의 일 정도의 모습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말로 다 못하지만 그래도 한 세상 살면서 그 못다 한 말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은 신이 아닌 사람이니까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나는 나만이라도 우리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진심으로 우리 엄마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우리 엄마의 마음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다. 비록 내가 낳은 아이들의 엄마 노릇하느라고 우리 엄마 자식노릇은 부실했지만 그래도 엄마의 깊고 넓은 마음은 헤아린다는 걸 아실 거라는 걸 안다. 뵙게 되면 "엄마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다른 자매들 앞에선 "난, 엄마를 존경한다."라고 당당히 말했으니까 그 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우리 엄마는 아실 것이다. 불어 은 뿌리가 되어주신 엄마께 감사함도 전하고 싶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엄중하게 다가왔다. 부모 마음은 한결같이 자식이 잘 되길 바란다. 그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진심이라면 본인이 잘 살아야 한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라는 말도 말이지만 '자식은 부모의 나쁜 점까지도 욕하면서 닮는다.'라는 말도 있다. 같은 맥락이지만 그 정도로 부모 역할의 중요성을 말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부모 중에서 엄마라도 자식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세상 누구도 그러하지 않더라도 엄마는 자식을 끝까지 따뜻하게 품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식은 엄한 부모의 속마음을 헤아리고 부모도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알고 애틋함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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