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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May 09. 2023

알고 보면

자아성찰

  어느 파킨슨병 환자의 글을 읽다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갑자기 자판 위에 두 손을 올려놓게 되었다. 그 작가의 마음의 파고가 너무나 나와 닮았다는 생각에 글을 쓸 컨디션이 아님에도 그래도 글이 쓰고 싶어서 뭐라고 쓸지 걱정과 궁금증이 한 몸이 되어 내게 다가오는데도 그래도 막무가내로 글을 쓴다.


  심한 수면부족으로 눈도 귀도 정상이 아니다. 특히 귀는 소라껍데기를 두 귀에 대고 있는 것처럼 붕붕 진동이 인다. 그런 상태로 책을 읽는 중이었다. 작가는 파킨슨병이라는 말을 듣고 울고불고했고 우울감에 빠져있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아니, 왜 내가 이러고 있지? 왜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고 현재를 망치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고 내가 어떻게 지낼지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진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 후로 일상적인 일을 하고 책을 열 권을 썼다고 했다.


  보통의 사람들은 한두 번쯤은 '아,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한다. 어떤 경우 그런 감정이 오래가기도 하여 그 마음을 실행하는 경우들도 종종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때로는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향해 "죽어버릴 거야."이런 말들도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마다 뜻하지 않게 방황의 시간들이 있다. 애꿎게도 인생은 장애물 경기와도 흡사하다. 묵묵히 달리는데 넘고 또 넘는데 끊임없이 허들이 앞을 가로막는 경우가 있다. 불치의 병에 걸린 환자도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일상으로 돌아가서 씩씩하게 살아내는데 멀쩡한 육신을 정신이 잠들게 만들기까지 해 버린다.


  부모는 자식을 여럿 낳아 분골쇄신 그야말로 사즉생으로 자식을 기른다. 부모는 딱 이십 세까지만 기르면 자식을 다 길렀다고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십이 넘걸랑 대대적인 인도식을 거행해서라도 당사자들에게 기르는 권한을 일임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기르게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간 딱히 자신을 대하는 부모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든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저런 걸 원 없이 본인이 본인을 위해 보완해 나아가기도 하고 건강하고 멋지게 스스로를 기르는 게 맞다고 본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온전히 혼자인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배우자를 만나고 자녀를 낳아 르고 이 모든 게 알고 보면 성장이요 또 성숙해 가는 과정이다.  


  불치의 병으로 황량한 황야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스스로를 목격하는 기분 일건대 본인이 살아왔던 지난날을 점검하고 새롭게 살아낼 방향을 재조정해가면서 오늘을 멋지게 살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에 괜히 건강하고 멀쩡한 스스로를 링 위에서 밀어내려고 하는가 하면 밟기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박동하는 생명에 부디 헛짓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름지기 스스로가 강건한 스스로가 되도록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생각이다.


  작가가 파킨슨병에 걸리고도 열 권의 책을 썼다고 했다. 아직 책 읽기를 시작하는 단계이니까 자세한 건 모르지만 본인의 심경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글을 읽으면서 글을 쓰는 작가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먹었던 마음이 몇 가지 있다. 어릴 적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훗날 나를 추억하는 능력이 부족해질 경우를 대비하여 내 추억을 글로 새기고 싶어서, 나뿐만 아니라 내가 생을 마감한 후 혹여 나를 그리워할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저런 마음으로 시작한 글이 나를 정화시키기도 하고 나를 지탱하게도 한다는 걸 실감한다.


    각자의 인생은 많이 다른 면도 있지만 또 눈코입팔다리가 있는 게 같듯이 많이 닮았다. 작가가 인생을 숙제처럼 생각하고 살다가 불치병을 갖은 후 재미있게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예전에나 지금이나 아직도 난 인생이 '숙제'라고 생각하는 면이 있다. 생각은 재미있게 살고 싶은데 여전히 숙제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리고 매사 강박처럼 그 '잘'이라는 결과물을 의식하면서 산다. 잘하고 싶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고, 좋은 평가를 받고 싶고, 결과적으로 스스로가 생각하든 타인이 생각하든 멋진 사람이고 싶은 강박이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지금쯤은 익을 때도 되었는데 여전히 설익었다. 여전히 여유롭지도 않고, 여전히 뭔가에 갇혀 산다. 난감한 상황 앞에 여전히 해답을 찾지 못하고 괴로움을 품고 방황한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는 느낌표보다 물음표가 더 많은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 성장시켜야 하며 또 성숙해 가야 한다면서 여전히 더 성장해야 되고 더 성숙해야 된다. 언젠가는 여유롭고 진정으로 자유로운 내가 될 수 있을까? 그래도 걷다 보면 여유롭고 자유로운 때가 올 거라는 기대를 품고 산다. 알고 보면 결과가 대동소이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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