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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May 11. 2023

봄에 맞는 가을

외로움

  영상 27도, 돌림노래 하듯 꽃이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 한다.

소리 없이 피고 지고 하는 줄만 알았는데 소리를 대신하여 향기를 뿜어대는 꽃도 있다.

아카시아향이 우리 동네를 점령했다.

분명, 봄이다. 초록초록하고 노랗고 붉고 하얗고 날마다 대 운동회가 열린 것처럼 화려하다.

이 와중에 낙엽 지는 가을을 느낀다. 달력은 오월이다.

오감 중에 통증을 느끼는 통점은 진즉에 버리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오월에 나 홀로 쓸쓸함을 느끼며  아파한다.


  왜, 내가 신뢰하고 오래 함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하나 둘 신뢰를 박살을 내고 말까?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배신을 해버린다.

그것도 모두 알고 보면 본인들의 잇속을 위해 관계의 가장 기본인 신뢰를 헌신짝 버리듯 버린다.

생의 주기가 가을이라 봄에도 여름에도 자꾸 낙엽 지듯 신뢰를 버리는 걸 목격해야 되는 걸까?

깊은 신뢰 속에 마음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때마다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배신의 상처가 치유될만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타자가 나타난다.

이제 마음주기가 무섭다.

인간은 다 그런가, 그걸 나만 모르고 또 흠뻑 빠지고 허우적거리고를 반복하는 걸까?


  난 알고 보면 상당히 불쌍한 사람이다.

누군가가 너는 무엇으로 사느냐고 물으면 지체 없이 情으로 산다고 답한다.

그런 내게 情을 주면 배신으로 화답하면서 나를 방황하게 한다.


  바닷가에 모래탑을 쌓아놓고 파도가 달려와서 모래탑을 조금씩 조금씩 훑고 가는 것처럼 내 주위의 사람들이 사라진다. 그들은 본인들의 잘못을 어느 정도 감지하고 얼음처럼 있지만 난 그 얼음을 다시 내 체온으로 녹이고 싶지 않다. 구차하다. 아니 두렵다. 한 번 배신하는 사람은 그 습관 버리지 못한다. 그걸 알고 다시 다가가기가 두렵다.


  어쩌면 애초에 정을 주지 말아야 했고 내 마음 지 않다는 걸 일찍 감지했어야 했다.

그런데 난 당초부터 그런 걸 감지하는 능력이 없는 게 분명하다.

마음을 주기로 마음먹으면 그냥 콩꺼풀이 벗겨지지 않고 쭉 간다.


  적당한 거리, 필요하다.

정이니 뭐니 그런 말을 꺼낼 관계가 아니라면 당연히 적당한 거리, 필요하다.

정주고 마음 주고 그런 사람들이 신뢰를 저버려서 아픈 거고 그런 사람들이 백 명, 천명이길 원하는 게 아니다.

그저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 허허로울 뿐이다.  


  본시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고 했다.

이 나이가 되면 알만도 하면서 또 기대를 해버렸나 보다.

누굴 사귀기가 그렇다.

주변에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살아야 하나 보다.


  쓰디쓴 맛을 보고 얼굴에  깊은 주름으로 새겨놓고도 그래도 인간인지라 情이 고팠나 보다.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다고 양지쪽을 향해 활짝 웃으면서 살면 된다고 해놓고 그 양지의 검은 그림자를 봐버렸다.

너무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데 내게 너무 가혹한 게 아닌가 싶다.

자꾸 넘어져서 일어나는 방법을 알 법도 한데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인간인데 어떻게 없이 그 많은 시간을 살 수 있을까?

그렇게 살아도 사는 걸까?

사람들은 왜 자꾸 가장 중요한 걸 중요하게 생각을 못하고 그렇게 쉽게 버릴까?

그 이유를 모르는 나는 늙은 아이다. 늙기만 했지 아는 게 없는 아이만도 못한 아이다.


  공수래공수거라고 하더니 벌써 하나 둘 떠나보내야 하는 걸까?

분별력 없는 나는 아직 초가을쯤이라고 생각하는데 신뢰를 저버리고 우수수 떨어지는 이들이 마치 늦가을인 것만 같다. 우수수 떨어져서 나목이 되어도 그 나목은 봄이 되면 또 파릇파릇 싹이 돋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진하고 깊고 따뜻한 情이 철철 넘치고 의리 있고 절대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참다운 사람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부디 내 욕심이 욕심으로 끝나지 말고 소원성취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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