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고민이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일을 두 번 경험하고 아직도 그 위협이 잠재되어 있는 일을 계속한다는 건 무모한 짓이다. 날마다 모기에게 수십 번을 물리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텃밭을 다녔다. 약 2년 전에 말벌에 물려서 119를 불러 타고 응급실엘 갔었다. 벌에 쏘여 무슨 호들갑인가 할 것이다. 그런데 '딱 죽겠구나.' 싶었었다. 골든타임에 조치를 못 하면 진짜로 죽을 수 있겠다는 경험이었다.
같은 경험을 지난주에 또 했다. 말벌보다 크기가 작은 벌들이 순식간에 온몸을 공격했고 특히 머리에 수도 없이 많은 벌들이 다시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파고들며 물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상적인 행동을 했을 뿐인데 그 많은 벌떼들이 어디에서 있었던지 머리를 문지르며 털어내려고 안간힘을 써도 당해낼 길이 없었다. 주변에 있는 물을 온몸에 끼얹고 산 아래로 달려갔다.
아파트 경비실 옆에 있는 물을 하염없이 끼얹으며 벌들을 털어냈다. 119차 두 대, 소방차, 경찰차가 와 있었다. 같은 시각 텃밭에 있던 여자분이 산아래로 내려가서 불렀었던 모양이다. 이웃 밭에 있던 남자분은 위험을 무릎서고 내게 물을 부어주었었다. 온몸이 물에 젖은 상태고 벌 독이 덜 퍼졌었던 터라 급히 집으로 가서 아직 남은 벌을 씻어내고 옷을 갈아입고 119차를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119차를 타기 직전부터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몸 내부가 이상한 기류로 변해감을 느끼면서 응급실에 빨리 도착하길 독촉했다. '죽겠구나!' 그래도 한 번의 경험이 있었던지라 응급실에 도착하면 벌 물릴 때 주는 주사를 맞으면 살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빨리 가주세요, 죽을 것 같아요."를 반복하며 응급실을 향했다.
그날이 남편 생일이었다. 남편은 미역국을 먹고 두 시간 거리의 직장을 갔고 난 텃밭을 한 바퀴 돌고 출근할 계획이었다. 보호자가 있어야 입원할 수 있다고 남편을 부르라고 휴대폰을 주라는 것이었다. 처음도 아니고 겨우 직장에 도착했을 텐데 남편한테 너무나 미안해서 연락하지 마라고 부탁하며 하는 수 없이 대학병원이 직장인 시누에게 연락했다. 그래서 시누가 왔다.
주사를 맞았는데도 계속 아팠다. 형언하기 힘든 통증에 주사를 더 놔달라고 부탁하고 진통제도 더 놔달라고 부탁했다.주사는 더 안되고 진통제는 더 놔줬다. 이른 시각인 까닭인지 다른 환자 한 명과 나뿐이었다. 의사는 안 보이고 간호사분만 보이고 의료대란이라 의사가 없는 건가 싶었고 아픔은 계속되고 무서워하는데 그 사이 시누가 왔다. 내 옆에 오더니 "목사님께 기도해 달라고 할게요." 휴대폰을 꺼내며 한 시누의 첫마디 었다.
아주 많이 다른 시누에게 연락한 내가 잘못한 거였다. 불편을 주기 싫어서 연락을 꺼렸던 남편에게 바로 연락해서 와달라고 했다. 어떤 간호사왈 "남편과 사이가 안 좋으세요?"라는 말까지 들으며 연락을 만류했었는데 엉뚱하고 많이 다른 시누가 나타나 자기 있는데 왜 오빠를 오라고 하느냐고 묻자. "이럴 때 보호자가 돼주라고 남편인 거 아니겠냐."라며 시누는 그만 가주라고 부탁했다.
남편이 나타나자 마음은 든든했다. 간호사분이 몸에 쏘인 벌자국을 일일이 확인하고 머리에서만 삼십 개의 벌촉을 뽑아냈다. 몸엔 수많은 쏘인 자욱 중에 딱 하나의 벌 촉이 있었다. 남편에게 머리를 더 확인해서 벌촉을 뽑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더 없었다. 절차를 밟아 약을 타고 퇴원을 했다. 약을 먹고 잠 못 이루고 냉찜질을 해도 여전히 아팠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약을 더 사고 바르는 약을 발라도 몸이 불이 나도록 가렵다.
그 와중에 세 번이나 텃밭엘 벌집 제거반이 왔으나 못 발견하고 약만 뿌리고 갔다. 119를 불러주던 이웃 텃밭 여자분에게 연락이 왔다. 내 무가 병들어서 다 죽어간다고. 건강하게 잘 자라던 무가 병색이 완현했다. 주인 없는 티를 냈다. 아직도 벌이 한 두 개 날아다닌다. 고민이다. 이걸 그만둬야 되는지 계속해야 되는지. 여기저기서 가까운 분이 벌이 쏘여 사망했다며 조심하라고도 하고 본인 같으면 절대 안 간다고도 한다.
처음 겪었을 땐 그렇게까지 두렵지 않았다. 두 번 겪고 나니 무섭고 두렵다. 가장 두꺼운 양말을 신고 벌 퇴치용 망사 모자를 쓰고 완전무장을 하고 텃밭엘 갔지만 예전 같지 않다. 얼마 남지 않은 정년 후를 생각하면 이만한 소일거리가 없다. 왜 하필 벌이 출몰하여 시련을 주는지 야속하다. 무모하고 싶지도 않다. 새싹이 움트고 성장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맛보기 힘든 힐링 포인트다. 내겐 꼭 필요한 공간인데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