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노란 생명의 불빛들

복수초 핀 고흥 봉래산

by 김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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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뉴스’를 분석한다.

‘첫 꽃 속보’는 2월 9일, 미동산수목원(충북도 산림환경연구소). 주인공은 땅바닥에 콕 박혀 있는 복수초. 샛노란 꽃잎을 안고 있는 봉오리. “오, 오”

그러나 ‘피었다’는 논란도 있겠다. 꽃소식을 전하는 이들도 분명 의식했다. ‘봄을 알리는 ‘첫 꽃망울’’이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냈다.


계룡산국립공원, 무등산국립공원, 국립세종수목원, 경주국립공원 등 잇달아 터지는 복수초 소식. 주제어는, 성큼 다가온 봄, 언 땅 뚫고 올라온 대견한 꽃망울…. 내장산국립공원은 변산바람꽃과 함께 복수초 핀 소식을 전하며 “기다리던 봄이 왔어요” 한다.


국립공원 봄소식 전달 업무는 자원보전과장들 몫이다. 김진태(계룡산), 이무형(경주), 심용식(내장산) 과장 모두 봄을 알리며 ‘코로나 19’를 얘기한다. “고난을 이겨내고 활짝 핀 복수초를 보며 지친 심신에 활력을 불어넣으면 한다”고. “웅크렸던 몸과 마음에 싱그러움을 가득 채우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다도해국립공원인 고흥 나로도 봉래산도 해마다 복수꽃 소식이 날아드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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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치의 바다, 나로도항

나로도(羅)老島)라는 땅이름은 바다에서 섬을 봤을 때, 바위들이 바람에 날리는 비단처럼 아름다워서 붙여졌다. 중국 상인들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조선시대 이곳으로 유배를 온 이건명이 그리 불렀다고도 한다. 조선시대 나라에 바칠 말을 키우는 목장이 많아 ‘나라섬’으로 불리다 한자로 바꾸며 나로도가 됐다는 얘기도 있다.


나로도의 중심지는 나로도항. 이 섬의 살림을 도맡아 해왔다. 위도와 함께 전국 2대 삼치 파시어장. 우리나라 도서지역에 상수도와 전기가 처음 들어온 곳. 1965년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될 때부터 1970년대까지가 전성기였다. 하루 500여 척의 어선이 드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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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도항은 삼치였다. 11월 말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땅발’(끌낚시)로 삼치를 잡았다. 70~80개 되는 낚시바늘을 바다 밑바닥까지 늘어트려 잡았다. 아무런 미끼도 사용하지 않는 속임낚시. 삼치는 성질이 급하다. 빠른 물고기이다. 자기보다 빠른 것을 잡아먹으려는 습성이 있다. 배가 빠르게 달리면 바늘을 덥석 문다.


7월부터 11월까지는 ‘천대바리’(정치망)로 삼치를 잡는다. 그물을 45도 각도로 눕혀 끌고 가며 삼치를 잡는다. 여름에는 수온의 영향으로 삼치가 물 속 깊이 들어가지 않고 ‘떠서’ 다닌다. 삼치가 잡히는 여수와 고흥 사이 ‘봇돌바다’, 전국적으로 그 바다를 모르는 어부가 없었다.


봉래산(410m)은 섬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비단처럼 날리는 갯바위도 엿보고, 섬과 마을이 어우러진 망망대해를 내다볼 수 있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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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밭 바라보다 마음 내려앉는 봄날

염포마을에는 매화꽃이 폈다. 봄까치꽃은 사방천지다. 그러나 쫑긋 돋아난 마늘밭 바라보다, 마음 내려앉는 봄날.


2022년 새해 인사들은 “어려운 시기 함께 이겨내자”는 응원이었다. 나로도항 중국집 식당도, 선착장 배들도, 염남마을 산비탈 밭들도 모다 간절해 보이는 시기. ‘흙은 담은 스티로폼 폐품 상자에 꼬챙이를 꽂고 나팔꽃 꽃씨를 심는 마음씨가 힘처럼 빛나’(허만하, 높이는 전망이 아니다)기를….


우크라이나,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새끼를 껴안고 있을 어머니, 두려움과 죽음이 일상이 돼버린 사람들…. 용납될 수 없는 사태, 용기가 꺾이지 않기를…. 생명의 힘이 뭉쳐 세지기를…. 남쪽바다 물빛처럼 번지기를…. 2022년 봄은 간절한 희망,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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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거하듯, 당연하다는 듯 꽃대 내민 복수초

봉래산 산길 문턱, 복수초가 무더기로 폈다. 세상의 빛을 한데 모아놓은 듯 샛노란 빛깔.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반짝임. 바위틈 사이로, 어둔 그늘 속에, 항거하듯, 당연하다는 듯 꼿꼿하게 꽃대를 내밀었다. 남쪽 끝 외나로도, 벼랑 끝에서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복수초. 여기저기, 제 몸에 불을 켜,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생명의 불빛들.


숲길 이쪽저쪽 복수초는 마을을 이뤄 펴있다. 이 마을 들렸다 저 마을로 간다. 산봉우리에 오르면 섬들이 바다 위에 꽃처럼 피어있다. 다도해, 마을을 이루고 있다.


복수초는 한자로 복 복(福) 자와 목숨 수(壽) 자를 쓴다. 행복하게,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 자유. 복수초는 ‘얼음새꽃’이라고도 부른다. 이른 봄 얼음 사이로 꽃을 피운다. 제 몸에 열을 내 주변 눈과 얼음을 녹인다. 그렇게 마을을 이루고 봄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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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가장 오래된 편백나무숲

봉래산 편백나무·삼나무숲에 든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편백나무·삼나무숲이다. 편백나무 7천 그루, 삼나무 2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시험림으로 조성됐다. 1981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돼 훼손되지 않고 지금의 모습을 지켜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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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곡한 숲은 하늘에 닿아있다. 봉래산 숲길 땅바닥에는 쌓아 올린 돌무더기가 여럿 있다. 돌 하나에 걱정, 돌 하나에 소원이 정성스럽게 얹어진 돌탑. 버려진 돌들에 마음들이 새겨진 탑. 산사에, 마을에 세워진 돌탑. 광주 망월동에도, 제주 너븐숭이에도, 충청 노근리에도, 여수 이야포에도 세워진 돌탑.

어둑신한 숲속에 돌탑이 샛노란 복수초처럼 빛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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