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화장실 앞에서 이 질문을 받는다면
평소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 표현들이 다른 어떤 이에게는 낯설고 어려울 수 있다. 이제 막 한국어를 배우고 문화를 익혀나가는 외국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 낯섦과 익숙함 사이의 공간을 메워주는 것이 한국어 강사의 역할 중에 하나이다.
2024년의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 강사로서 강렬한 깨달음을 얻은 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6월 중순, 대학 언어교육원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정리하던 중 한 몽골 남학생이 다가왔다. 그 학생은 이번 학기부터 어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고향에서 한국어를 독학한 덕에 1급을 건너뛰고 2급에 배정된 학생이었다. 말하기 실력이 뛰어나고 호기심 많아 수업 중 질문도 자주 했다. 특이하게도 그는 본명 대신 어릴 때부터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는 동물 늑대를 별칭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날도 그의 눈에는 궁금증이 가득했다.
“선생님, 질문이 있어요. 한국 사람들은 왜 화장실에서 ‘큰 거, 작은 거’라고 물어봐요?”
“네? 그런 질문을 어디서 들었어요?”
“지난 주말에 고향 친구와 한강에 갔는데, 화장실에 사람이 많았어요. 그래서 기다렸어요. 그런데 한국 아저씨가 저와 친구를 (아래위로 훑어보는 행동을 하며) 이렇게 보더니 ‘큰 거? 작은 거?’라고 물어봤어요.”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머릿속으로 상황을 떠올려봤다. 한국의 남자화장실은 용무에 따라 쓰는 변기가 다르다. 짐작하건대, 늑대 씨에게 말을 건 아저씨는 외국인들이 긴 줄을 기다리는 게 안타까워 용무를 확인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려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늑대 씨는 뭐라고 대답했어요?”
“선생님이 가르쳐줬어요. ‘것’은 물건이에요. ‘것’은 ‘거’라고 말해요. 근데 아저씨가 친구와 나에게 ‘큰 거? 작은 거?’ 물어봤어요. 그래서 나는 건강해서 ‘큰 거’라고 했어요. 아저씨가 나를 데리고 문이 있는 곳에 들어가라고 했어요. 나는 여기가 아니라고 손으로 다른 곳(변기)에 간다고 했는데, 아저씨가 큰 거는 들어가라고 했어요.”
순간 당황스러웠다. 이전 수업에서 '것'과 '곳'에 대해 설명했던 게 떠올랐다. 학생들이 ‘큰 거, 작은 거’를 단순히 물건의 크기로 이해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건강한(?) 늑대씨는 당당하게 자신을 '큰 거'라고 소개한 것이다. 아마도 이 말이 한국에서는 대소변을 비유하는 표현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아하, 늑대 씨 많이 당황했겠어요.”
“그런데 친구가 많이 속상해했어요. 나(에게) 물어보고 아저씨가 친구한테 ‘큰 거? 작은 거?’ 했어요. 친구는 조금 힘이 없어요. 안 건강해서 ‘작은 거’라고 했어요. 아저씨가 계속 서 있으라고 했어요. 왜 한국은 화장실 갈 때 ‘커요, 작아요’를 물어봐요? 그게 왜 중요해요?”
이야기를 다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일상 표현이 누군가에게는 충격적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로 인해 한국 사회에 대한 오해나 편견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늑대 씨에게 '큰 거, 작은 거'의 실제 의미와 아저씨의 의도를 설명해 주었다. 처음엔 당혹스러워하더니, 곧 재미있는 경험이었다며 함께 웃었다. 이 일을 계기로 늑대 씨는 한국인들의 말을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한다. '큰 거, 작은 거'라는 표현이 그에게 한국어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 열쇠가 된 셈이다.
외국인 대상 교육 현장에서 익숙함과 낯섦은 서로 다른 시각에서 볼 때 그 다양성과 연결성을 더 깊이 경험하게 해 준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다른 이에게는 낯선 시작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세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기회를 얻는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시선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