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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Aug 29. 2023

내 주변 온통 직장인들 뿐

글 쓰는 친구를 만나고 싶다. 내 주변엔 온통 직장인들뿐이고 하루 10시간을 그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다른 류의 사람을 만날 기회나 시간이 없다. 노력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만남 어플(‘문토’나 ‘플립’ 같은 모임 주선 플랫폼을 말한다)에서 글쓰기나 독서 토론 모임을 찾아본 적이 있었다. 퇴근하고 갈 수 있는 거리에 적당한 주제를 찾아서 신청을 하려고 모집 요강을 살펴봤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문턱이 있었다. 바로 연령 제한이다. 그러니까 20대에서 30대로 참석 가능 구간을 구분해 놓거나 ‘00살 미만’ 이런 식으로 끊어 버리는 식인데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왜? 같이 글 쓰고 독서 모임 하는데 도대체 왜 나이 구분을 둔다는 말인가.


사실 그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내 나이가 이제 젊은이들의 그룹에서 제외된다는 현실이었다. 마치 ‘이제 우리끼리 놀래요’ 하며 나를 배제하는 동네 놀이터 동생들처럼 나는 섭섭했고 쓸쓸했으며 내가 그렇게 많이 컸나 하는 자의식이 발동했다. 하긴 어쩌면 내가 그동안 참석했던 모든 모임에 그런 비슷한 연령 제한이 있었을 수도 있다. 다만 그동안 나는 안전한 구간에 있었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몰랐는데 사실은 내가 귀신이었다거나, 인간이 아니라 사이보그였다는 영화의 마지막 반전처럼 잠시 충격을 받았다.


이삼십대로 빙의하여 찬찬히 ‘연령 제한’의 취지에 대해 생각해 보니 몇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나이 많은 꼰대들이 끼면 분위기를 주도하려고 한다거나, 은근히 대접받으려고 든다거나 혹은 대접을 해줘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생긴다거나, 그들이 정한 시스템을 따르지 않고 ‘자자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하지’ 하면서 서당에 훈장님처럼 구는 게 싫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뭐, 그냥 젊은 사람들끼리 어울리고 싶은 근본적인 마음일 수도 있고.


플랫폼에서 스스로 모임을 기획하고 주선하는 것은 거의 이삼십 대다. 나 같은 사오십 대 형님 누나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해서 앱으로 모임을 가지는 것은 포기했다. 그리고 연회비를 내면 모임을 몇 회 가질 수 있는 서비스도 발견했는데 내가 귀신이었다는 걸 알게 된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돈을 지불해야만 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현실까지 확인되는 것 같아 그 서비스도 포기했다.


그러던 중 브런치에서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브런치 글을 올리는 사람들을 모아서 일요일마다 화상 채팅(‘줌’ 같이 화상 회의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으로 서로의 글을 소개하고 생각을 나누는 모임을 할 사람을 모집하는 글이었다. 자격요건에 연령 제한도 없고 돈을 낼 필요도 없어서 내가 예전에 썼던 글과 함께 신청서를 보냈다. 한 주 정도를 기다리고 답장을 받았는데 어떤 어떤 이유로 모임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통보였다. 이래저래 참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는데 조영래 변호사의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라는 책이었다. 조영래 변호사는 인권 변호사로 전태일 평전을 쓴 작가이기도 한데 조영래 변호사가 절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을 때 전태일 분신 사건에 발생하고 그때 조영래 변호사는 전태일에 대한 일화를 들었다고 한다. 전태일이 노동법 책을 우연히 손에 넣게 되고 읽어보려 했지만 온통 한자투성이고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내용이 많아서 ’대학교 다니는 친구가 한 명만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전태일보다 1살 많은 조영래 변호사는 그때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는데, 나 역시 그 대목에서 법학도로서 어떤 사명감 같은 뜨거운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로 조영래는 사법고시를 합격하여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다른 과목은 몰라도 노동법은 항상 A+를 받았다.


지금 나는 글 쓰는 친구 한 명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직장인은 이 정도 시간과 양이면 충분히 사귀어 봤다고 생각한다. 목표도 없고 꿈도 없는, 현실을 규탄하면서도 변화는 또 바라지 않는, 결말은 늘 쫓겨나거나 스스로 쫓아 나오게 되는, 매번 그걸 보면서도 자기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클론 같은 직장인 친구들은 이제 재미가 없다. 반면에 무엇을 쓸까 수시로 고민하고 남이 쓴 문장을 보면서 감탄하며 고독과 한 팀으로 내 것을 세상에 새기는 작업을 하는 작가는 좀 멋있고 부럽다.


그런 친구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두 명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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