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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Sep 18. 2023

내 그림에 사인을 꼭 넣는 이유

어릴 적부터 낙서를 많이 했다. 종이가 있고 뭐든 쓸 것이 있다면 주저 없이 그림이나 문자를 어지럽게 그려댔다. 교과서나 문제집은 물론이고 가정통신문에도 낙서를 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회사에서 교육을 하거나 개인적으로 강연을 가서도 교재를 받게 되면 가장 첫 번째 페이지에 나의 흔적부터 세기고 시작한다.


낙서를 자주 하는 심리나 이유를 따로 찾아본 적은 없었으나 내 경우만 놓고 유추해 보면 이렇다. 일단 집중이나 몰입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그것에만 온 신경을 모으니까), 상상하기 좋아서 일 수도 있고(그리는 대상보다는 딴생각 위주로 하니까), 현실도피 같은 느낌도 있는 것 같다(애써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려는 시도). 굳이 심리적 분석을 시도해서 그렇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그냥 내가 천재라서 창의력을 도저히 제어할 수 없음에 마구 뿜어져 나오는 것 일 수도 있다. 마치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수학 천재가 혼자 막 어떤 우주의 산식을 시도 때도 없이 계산하는 것처럼.


내가 그린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를 하는데, 기대했던 폭발적인 반응은 아직 없다(그래, ‘아직’이라고 썼다). 사실 그림 실력이 좋거나 재능이 있는 편도 아닌지라 ‘그림’이라는 표현 자체도 조금 멋쩍어서 양심상 ‘낙서’라는 타이틀을 사용하고 있다. ‘낙서’는 그려지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장르로써 당당하게 사용해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세상에 발표하는 낙서에는 항상 나의 고유한 사인을 넣고 있는데, 그 이유가 조금 재밌다.


혹시라도 말이다. 내 그림이 유명해진다면. 사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만약에 누군가 내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데 사인이 없다는 걸 알고 실망을 할 수도 있는 일이고, 혹은 그로 인해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면 내가 좀 미안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걸 미연에 방지하고자 꼬박꼬박 사인을 넣고 있다. 라고 말하면,


나를 나르시시즘 양껏 바른 몽상가라 욕할까.


조금 더 설명을 해야겠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 일은 정말 모른다’고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풀리고 진행될지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다. 스티브 잡스에게 이 정도로 인류에 파급력이 있을 줄 예상했냐고 물어본다면 ‘네, 사실은 어느 비 오는 날 저녁에 저는 미래를 봤습니다‘ 하진 않을 것 같다. 마이클 잭슨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 해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상상한 적은 있었지만 나도 내가 이렇게 될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라고 하지 않을까.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다. 혹여 알고 있었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냥 사기꾼이거나 그저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일 뿐, 인간에게 미래는 상상할 수 있을지언정 알 수 있는 대상은 아니다.


우리는 다만 기대하는 결과를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스티브 잡스나 마이클 잭슨에게도 분명히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머릿속 생각이 먼저 있었고 그걸 목표로 만들어서 계속 노력했을 것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는 꼭 그렇게 된다는 확신도 없지만 안된다는 보장도 없다. 즉, 결과는 절대로 알 수 없다.


형편없는 솜씨지만 어쨌든 나는 그림을 그렸고 이 그림은 비싸게 팔릴 수도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팔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뭐가 되었던 그 둘 중에 하나 일 테고, 가령 팔리지 않는 쪽이라면 결과는 실패이자 그리기 전의 상태랑 같아서 크게 생각할 거리가 없는 것이고, 만약에 팔린다는 쪽이라면 나는 내가 생각한 이유에 따라 사인을 꼭 넣어야 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나도 내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책이 나오는 것보다 팔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많이 팔려야 글쓰기로 생계를 유지한다거나 내 이름을 더 많이 알릴 수 있고 두 가지가 선순환 구조로 전환되면서 그림도 팔리고 책도 팔리는 세계관을 만들 수 있다.


최근에 동네에 알라딘 매장이 크게 생겨서 구경을 간 적이 있었는데 에세이 장르 쪽으로 가보니 책이 정말 많이 있었다. ‘이렇게 많이 찍어낸다고? 아니, 도대체 이걸 사람들이 읽기는 하는 거야‘라는 의문이 생겼다. 아마 대부분이 빛을 보지 못하고 조용히 나왔다가 금방 중고로 팔린 게 아닐까라는 의심도 들었다. 우리나라 출판사가 8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마치 티브이 홈쇼핑 상품기획자 마냥 인기 있을 만한 상품을 찾아서 한방 크게 터트리는 대박을 노리며 책을 기획하고 저자를 찾아다니지만 잘 팔리는 책은 일 년에 몇 안 된다. 그리고 특히 요즘은 독립, 반독립, 전자출판처럼 책을 내려면 얼마든지 스스로 낼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책을 내는 것보다 팔리는 책을, 글을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책을 낼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내 소재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내용인지, 막말로 내가 서점에 갔을 때 ‘오호라, 이거 쌈박한데’ 하면서 집어 들고 계산까지 완료할 만한 깜냥이 되는지 생각해 본다.


공항철도를 타고 출근을 한다고? 제목이 참 흥미롭네. 나도 그 열차 타본 적 있는 거 같은데, 무슨 내용일까. 직장인이 출근을 하면서 느낀 애환이나 변화의 갈망에 대한 내용인가 보네. 오호라, 나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참 공감이 가네. 글도 중간중간 웃긴 내용도 있어서 쉽게 잘 읽히네. 굵직한 메시지도 더러 있는데 위선 떨지 않고 담백하게 잘 풀어낸 거 같은데. 재밌다. 잘 읽었다.


이런 느낌이면 차암 좋겠다.


혼자 상상에 빠져서 마치 무슨 놀이처럼, 다 된 것처럼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건 아니다. 원하는 목표와 이루고 싶은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계속 꾸준히 정진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맞을 것 같다. 나는 나중에 나의 이 어설픈 그림들을 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을 책으로 만들어서 마찬가지로 시장에 내놓을 것이다. 그리고 유명해지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서 이 사회에 좋은 영감과 메시지를 전달하고 나로 인해 위로를 받고 재미를 느끼고 치유를 경험하고 나아가 감동과 깨달음을 얻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그 대가로 돈을 많이 벌어서 회사 같은 거 다니지 않고도 계속 이런 창작의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그런 인생을 꿈꾼다.


써놓고 보니 가슴 벅차게 좋은 인생이다. 너무 가지고 싶은 삶이다.


그래 까짓것 인생, 어떻게 풀릴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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