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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Oct 30. 2022

직장인은 왜 술을 마시나

새벽 ‘굿모닝'(미라클 모닝을 나는 이렇게 부르고 있다)을 하고 출근길 산책과 독서를 음미하며 ‘나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내가 절대적으로 지배하겠어! 오직 나를 위해서 사용할 거야’라는 원대한 꿈을 실현 중이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술이다. 일주일에 1번 이상은 술 때문에 굿모닝을 못 하게 되고 출근길 술이 덜 깬 상태로 독서마저 놓치는 경우가 있다. 젊은 시절에는 숙취 회복력이 좋아서 다음날 아침에도 말짱한 경우가 많았는데, 나이가 들어가며 많게는 이틀까지 컨디션이 안 좋은 경우가 생긴다. 도대체 나는 왜. ‘금주’가 안 되는 걸까. 그리고 직장인들은 웬 술을 그렇게 자주 마시는가. 


옛날 어느 나라에서는 노예들에게 아편을 나눠 줬다고 한다. 마약은 신경계를 교란시키는 물질이다. 도파민과 세로토닌과 같은 호르몬을 비정상적으로 분비시켜서 고통을 잊고 쾌감을 느끼게 해준다고 한다. 특히 도파민은 사람이 어떤 일을 시작하게 하는 동기유발에 관여하는데, ‘그것을 해, 기분이 좋을 거야, 잊지 못하고 있잖아, 그래 빨리해’라는 실행을 재촉하는 유혹 물질이다. 그래서 도박을 하는 순간보다, 도박을 하기 전에 특히 도파민이 많이 분비된다고 한다. 소풍 전날이 더 설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마도 이것은 노예들이 귀족이 되거나 기술을 익혀서 신분 상승을 할 수 있게 동기부여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딴생각하지 말고 계속하던 일을 하게끔’ 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거다. 몇 가지 증거가 있다.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 책을 낸다거나 강연을 하는 등 부업을 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근로계약은 겸업금지 조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데, 반면에 술을 마시거나 회식을 할 때는 승인을 받는 절차가 없다. 업무에 해가 된다면 술도 마찬가지 아닌가. 내가 퇴근 후 열심히 책을 쓰느라 다음날 회사 업무에 지장을 주는 거나,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날 회사에서 해롱해롱 대는 것이 뭐가 다른가. 오히려 회사는 술을 장려하는 분위기다. 회식, 법인카드, 저녁에 한잔 어때, 언제 한잔해야지 까지 회사 문화는 술에 엄청 관대한 분위기다. 왜냐면 술은 분명히 회사에, 조직을 유지하는 것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의 발전에 대한 동기부여를 억제하고, 현실에 계속 안주하게 술이 도구로 쓰이고 있다. 지금 내가 당면한 현실에 불만을 느끼고 회사가 불만족스럽다면,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발전을 도모하고 회사 말고 다른 돈벌이를 알아보고, 연구하고, 시도해야 한다. 도파민은 그런 동기부여를 위해 분비되어야 한다. 그러나 술을 마시고 쾌감을 극도로 느끼게 한 후, 다시 포기와 좌절감을 맛보게 하여(숙취에 느껴지는 감정은 무기력감, 좌절감, 허무 같은 것뿐이다) 조용히 다시 일터로 돌아오게 하는 것. 그게 조직 입장에서는 훨씬 이득이 아닐까.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장면 “자자, 김대리 한잔 마시고 풀어, 다 그런 거지 뭐” 이렇게.


고로, 내가 새벽에 난리를 치며 시간을 지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음에도 수시로 술을 마시고 그 계획들을 뭉개는 이유는 길고 긴 직장 생활 기간 동안 술과 좌절의 문화에 길들여, 아니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묵은 때를 벗어내야만 한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쉬운가. 십 년을 넘게 회사에서 주는 아편을 받아먹고 중독되었는데 이게 한방에 멋지게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 도파민은 아직도 술을 원한다. 사람들과 떠드는 것을 원하며 맛있고 기름진 음식을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문제와 원인을 알았으니까 해결할 수 있겠지. 


직장인들이 왜 그렇게 술을 자주 마시냐고?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서? 아니. 결코 짧지 않고 설령 짧은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할 수 있는 건 많다. 그냥 중독이다. 조직은 우리가 발전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조직을 위해 헌신해 줬으면 한다. 그러니 차라리 술을 마시고 다시 일터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술에 관대한 문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딴짓’은 생각하지 못하고 숙취해소제를 마시며 멍하니 지하철을 탄다. 


"그래도 출근은 해야지"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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