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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Oct 30. 2022

퇴사? 안 합니다

후배가 퇴사를 한다고 한다. 임원들 회식자리에서 이름이 언급될 만큼 인정받는 후배였는데 결국 회사를 나가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최근 퇴사하는 젊은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다(예전에는 나이가 많으신 선배님들이 ‘어쩔 수 없는 사유’로 퇴사를 했는데, 요즘은 젊은 친구들의 ‘자발적 사유로’로 바뀐 것 같다). 젊은 후배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를 해 보았다. 


“퇴사 이유가 뭘까?”


“연봉이죠”


“최대감님 댁 종놈들은 쌀은 한 가마니씩 가져간다는데, 우리 주인은 너무 박한 거 아뉴? 이런 거지?”


하면서 흉내를 냈다. 후배들이 좋아한다. 나는 이런 위트가 있는 사람이라서 후배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닐 수도 있다). 퇴사하는 친구들이 마지막 인사를 오면 ‘잘 됐다, 부럽다, 건강해라.’라고 이야기해 준다. 어쨌든 더 나은 삶을 위한 결정이니까 잘 된 거고, 이건 진심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퇴사할 때 인사 안 하고 그냥 쿨하게 사라져야겠다’라고. ‘그동안 감사’와 ‘건강하고’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면 회사가 아니더라도 다시 만나면 되는 거다. 회사와의 계약은 끝이지만 우리의 관계가 끝난 건 아니니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세리머니가 떠나는 사람을 위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오랜 기간 생활을 했던 곳이라 ‘그래도 내가 여기 있었잖아, 존재했잖아, 너는 알잖아’라는 식으로 확인받고 싶은 기분이 날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안 해봐서 사실 잘 모른다). 어쨌든 나는 쿨하게 떠날 것이다. 그쪽이 내 성격과도 잘 맞는 것 같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초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직장 생활도 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주 5일 근무에, 휴가 있지, 명절 쉬지, 장사가 잘 되든 말든 정해진 날짜에 급여가 따박따박 나오고, 가끔 보너스도 나오고, 출산하면 출산 휴가, 다치면 병가, 혜택이 많다. 그런데 치명적인 단점은 큰돈이 안된다는 것. 그래서 기왕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다면 결혼, 출산까지는 장점이 많다고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준다. 그러나 결혼과 출산 이후부터는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그때를 시점으로 슬슬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나이가 많은 쪽으로 포지셔닝된다. 그러면 점점 내 회사 생활의 미래가 보이기 시작한다. 마라톤 출발점에서 수많은 사람들에 섞여 “탕!” 하는 소리에 정신없이 몇 시간을 달리기만 했는데 이제 어느새 슬슬 좌우 양옆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때 내 위치도 보인다. '이걸 계속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겠구나' 하는 순간이 온다.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보완하는 쪽으로 전략을 세우는 게 좋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무언가 준비를 하거나 실행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직장인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마라톤 시작점에서(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나라에 마라톤 하는 인구가 생각보다 많아서 시작점은 거의 콘서트장처럼 사람이 많이 몰려있다) 출발하려는 사람에게 ‘세상에 길은 많아’, ’ 경제적 자유를 찾아’, ’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 ’ 인간은 원래 스스로 사냥하는 존재야’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들릴 리가 없다. 그런데 몇 시간 달리다 보면 주변도 좀 조용해지고 뒤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물론 나도 그랬고 지금 후배들도 그럴 것이다. 


나는 내 시간 전체를 내가 운영하고 경영하고 싶다.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유인이니까. 하지만 사냥하는 법을 잊은 지 오래, 아니지 처음부터 배운 적이 없었지. 학교만 열심히 다녔고 주는 것만 받아먹고살았으니까. 그래도 내 선조들이 새겨놓은 사냥의 기술이 내 DNA 어딘가에 분명히 그 유전자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냥 밖으로 나갔다가는 사냥은커녕 잡혀 먹힐 수도 있다(그래 나는 안전제일주의 직장인). 그래서 생각한 전략이 틈틈이 근육도 만들고 어떤 사냥 도구가 나에게 가장 맞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것이 창인지, 칼인지, 총인지, 덫인지 만져보고 익혀보고 훈련을 해야 한다. 가장 기초적인 것만 익히고 실제 사냥은 결국 해봐야 숙련되는 법. 준비가 되면 사냥할 것이고 더욱 나를 낭떠러지로 몰아 강인한 사냥꾼을 만들 것이다(물론 이 책이 발간되고 수년이 흘러도 내가 회사원이라면 나는 실패한 것이니, 더 읽을 것도 없다. 지금 책을 덮어야 한다. 쏘리)


지금은? 퇴사요? 안 합니다. 퇴사라니요. 이렇게 좋은 곳을 왜 퇴사합니다. 저는 더 훈련하고 준비가 되면 하겠습니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 아닙니다.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것에 이만한 것이 어디 있습니다. 없습니다. 나가서 부딪히기 전에 이런저런 도구와 무기를 많이 만져보고, 그중에 나에게 딱 맞는 것을 찾아서 몇 개 챙겨 나가려고 합니다. 물론 제 꿈은 퇴사입니다. 지금보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자유롭고 더 많이 만족스러운 것을 찾아서 저는 떠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출근길 책도 읽고, 굿모닝도 하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이렇게 노력 중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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