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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Oct 30. 2022

직장인의 미래

협력사 직원이 온다고 해서 점심을 대접했다. 영업사원인데 나이는 나보다 10살 이상 많으신 분이다. 특별히 만날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주기적으로 방문하신다. 아마 정년을 코앞에 두고 있는지라 사무실에서도 특별히 할 일이 없을 것이고, 아는 거래처라고는 여기뿐이라 자주 방문하시는 건 아닌가 싶다. 사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간이 되는 날은 굳이 마다하지 않고 오시라 한다. 식사를 대접하고 커피를 얻어먹는다. 오고 가는 대화는 심심한 가십이 전부다. 


크고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들고 있길래 무엇인지 물어봤다. 가방의 정체는 책이었다. 나도 독서를 하는 사람으로서 책 이야기나 할까 싶어 어떤 책인지 물었다. 정답은 자격증. 대학생 아들이 쓰던 공학용 계산기도 보여 주셨다. 나이 먹고 공부하려니 쉽지 않다고 하셔서 나도 지금 공부한다면 그럴 것 같다고 했다.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이유는 알 것 같아서 굳이 안 물었는데 먼저 말씀하신다. 


“퇴직 후 뭐라도 하려면 이런 거라도 해야죠” 


직장인의 미래는 결국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회사에서 날고 긴들 결국은 또 다른 ‘급여’를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직장인이다. 좀 서글픈 현실이다 생각했다. 젊고 에너지 넘치며 뇌가 확확 잘 돌아갈 때 우리는 사원 대리라는 직급으로 엄청난 열정과 시간을 회사에 바친다. 그에 대한 대가는 터무니없는 박봉. 과장  차장 부장을 꿈꾸며 ‘그때는 나아지겠지 ‘ 하는 희망으로 버틴다. 그런데 막상 과장 차장 부장이 되면 그때부터는 퇴직에 가까워졌음을 실감한다. 또 버틴다. 그리고 퇴직 이후 또 다른 '급여'를 찾아야 한다. 직장인에게 돈을 버는 방법은 오직 ‘급여’와 ‘주식’ 뿐이다.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는데 부자가 되면, 그러니까 돈이 많으면 좋은 점이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늦은 나이에 자격증 공부를 위해 수학공식을 외워야 하고, ‘과연 누가 나를 써줄까’ 하는 낮아진 자존감으로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봐야 한다. 그리고 오너만 바뀌었지 또다시 누군가에게 시간을 저당 잡히고 지시를 받아 일을 해야 한다. 왜냐면 나는 아직도 돈이 필요하고 내가 아는 돈 버는 방법은 이것뿐이니까.


시답잖은 대화 중에 ‘대학’이라는 키워드가 나왔다. 그래서 나는 대학 무용론 자며 결국은 직장인이 되는 거 아니냐고 음모론 같지만 우리는 전부 속은 것 같다며, 대한민국 커리큘럼은 거대한 직장인 양성소라며 열변을 토했다. 차라리 어린 나이부터 재능과 선호를 기초로 기술을 익힌다면 회사가 되었든, 사업이 되었든 빨리 실패하고 노하우를 만들어서 성공의 확률도 훨씬 높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협력사 관계로 만난 것이라 제대로 된 논쟁이나 토론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연설을 급하게 마무리했다(그리고 그분 아들이 대학생인데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다). 누구와 하든 이런 논쟁은 의미가 없다. “나는 핑크색을 좋아한다. 남자라고 왜 핑크를 좋아하면 안 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아마 처음부터 우리에게 그렇게 주입한 대한민국 교육체계의 문제점이다”와 같이 단지 내 생각일 뿐인 것을 굳이 설득하거나 같은 생각을 해야 한다며 강요할 일이 아니다. 핑크색을 좋아하면 그냥 혼자 좋아하면 되는 거다.    


날씨 얘기, 러시아 전쟁 얘기 조금씩 하다가 헤어졌다. 


직장인의 미래를 우린 이미 알고 있다. 회사에서 잘나가는 선배들이 다양한 이유로 회사를 떠나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결국 우리는 ‘잘린다’. 열심히 해서 팀장이 되고 상무이사가 되고 대표이사도 될 수 있다고?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이고 ‘그래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잖아’라고 하는 사람이랑은 더 대화하고 싶지 않다. 오늘 만난 협력사 직원이 나의 미래 혹은, 모든 직장인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안에서 각자 나름의 꿈이 있고 계획이 있는 거겠지만.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투자를 열심히 해서 직장인을 졸업한다는 꿈을 꾸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처럼 다른 세계관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이가 있을 것이며,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짬짬이 골프도 치고, 해외여행도 다니며 나름 재밌게 인생을 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틀린 건 없다. 다른 것만 있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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