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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Oct 30. 2022

퇴근하고 글 씁니다


퇴근시간이 다가온다. 가지고 갈 것들을 책상 위에 쭉 올려놓는다. 밖에서도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기계식 블루투스 키보드를 하나 장만했는데, 가장 먼저 챙긴다(최근 것은 소중하니까). 휴대폰 거치대는 눈높이만큼 높이 올릴 수 있는 것을 준비했다. 사실 미니 태블릿을 계속 검색하고 있었는데, 기계식 블루투스 키보드가 무게도 좀 나가거니와 아무리 작게 만들었다고 해도 기본 크기가 있어서 휴대용으로는 부담스럽다는 결론을 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휴대폰. 어차피 ‘날리는 초안’ 작성용이기 때문에 휴대폰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런데 휴대폰은 화면이 작아서 글쓰기를 할 때 상체가 자꾸 앞으로 쏠리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휴대폰 거치대를 마치 카메라 삼각대 마냥 높이 올릴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눈높이만큼 올려서 쓰기로 했다. 결국 최종 조합은 기계식 블루투스 키보드, 휴대폰, 높이 조절 가능한 휴대폰 거치대, 그리고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이렇게 세팅을 했다. 내 작은 가방에 꽉 차게 들어가지만 무겁지도 않고 딱 좋았다(집에 있는 저울로 무게까지 계산된 조합이다).  


“먼저 갈게”


팀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후다닥 나온다. 회사에서 7분 거리에 있는 투썸플레이스에 들어간다. 스파클링 음료를 주로 시키는 데, 글쓰기를 하다가 한 번씩 마시면 탄산의 청량함이 ‘고생했어, 한 잔. 캬~’ 하면서 보상을 주는 것 같아 좋아한다. 자몽에이드를 주문하고 기다리며 자리를 훑어본다. 벽을 등지고 앉는 것이 좋은데 누가 내 화면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너무 싫어한다. 벽을 등지고 앉아야 마음이 안정된다고나 할까. 늘 앉는 자리는 계산대 정면 끝 벽면 쪽인데 거기에 앉아있으면 카페도 한눈에 다 들어와서 한 번씩 고개를 들고 쭉 둘러보기에 좋다. 


자리를 잡고 도구 세팅을 한다. 거치대를 올리고 키보드를 케이스에서 꺼낸다. 블루투스를 휴대폰과 페어링 하고 휴대폰을 어플을 연다. ‘지난번에 어디까지 썼더라’ 하며 오늘의 몫을 찾는다. ‘이걸 쓰면 되겠다’는 마음이 서면 거치대에 휴대폰을 가로로 올려놓고 거치대를 눈높이와 다시 한번 조정한 후 타이핑을 시작한다. 그리고 거침없이 써 내려간다. 마치 피아노 연주자처럼 상체를 흔들기도 하고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기도 하면서 타이핑을 한다. 가끔 카페를 둘러보는 여유까지 부리다가 드럼 연주자가 베이스 드럼을 밟듯이 다리를 달달달 떨기도 한다. 처음은 보통 그렇게 시작한다. 그러다 점점 몰입이 되면서 어깨가 휴대폰을 향해 모아지고 목은 거북목으로 변신하며 쪼그라든다. 그리고 ‘이 정도면 괜찮은 거 같은데?’ 싶을 때 에이드를 손에 쥐고 한 모금 쭉 빨아 당긴다. 가슴도 한번 쭉 펴보고 야구선수 마냥 어깨도 윙윙 돌려본다. 


카페에서 뭔갈 한다는 게 아직은 어색하다. 음료를 마시는 ‘식당’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다 먹었으면 빨리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회사 주변 독서실이나 공유 오피스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동료 한 명이 ‘카페에서 하는 게 훨씬 낫겠네’ 하고 이야기를 해줘서 시도해 보게 되었다. 하긴 주변에 시끄러운 소리야 노이즈 캔슬링 하면 되는 것이고, 가격도 많이 잡아야 하루 5천 원, 20일이면 십만 원이면 되니까(공유 오피스는 한 달 30만 원 내외) 카페를 뻘쭘해하는 내 마인드만 극복하면 괜찮은 장소가 분명했다. 


일단 책상에 앉으면 뭐든 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 뇌가 그렇다고 한다. 하기 싫어도 문제가 주어지면 해결을 시작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단다. 그래서 하얀 모니터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키보드에 손을 올리기만 하면 뭐라도 적게 되어 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기까지가 힘들어서 그렇지, 에이드 주문만 마치고 나면 1시간을 뭐라도 쓰게 된다. 집에 와서 다 지워버리는 경우도 있었지만(수정보다 다시 쓰는 게 효율적인 경우가 있다) 어쨌든, 뭐라도 하나씩 생산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스마트 워치로 스톱워치를 시작해 두었다. 이것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추적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집중하자는 의미도 있고 결정적으로 카페에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되니까(카페 고정관념. 이건 당장 고치기 힘들다. 카페 사장님이 굳이 오셔서 "한 12시간씩 있으셔도 됩니다"라고 해주시면 고쳐질까)는 의미도 있다. 거의 1시간 정도 하면 슬슬 몸이 쑤시고 어두워져서 가야겠구나 싶긴 하다. 한 꼭지 초안 정도 썼다고 싶으면, 그리고 스톱위치도 얼추 58분 정도 되었다 싶으면 남은 에이드를 한 번에 길게 다 들이키고 자리를 정리한다(남은 티슈로 테이블도 한번 닦아놓고 일어선다. “제가 너무 오래 있었죠. 헤헤” 하는 마음이랄까). 카페에서 나와서 카페 화장실을 한번 쓰고 밖으로 나선다. 


“오케이, 잘 가고 있어”


이렇게 생각하며 신나는 록 음악을 들으며 지하철을 탄다. 1호선을 타고 서울역에 내려 공항철도를 탄다. 인천공항까지 가는 공항철도는 서울역이 시작 역이라 빈차 상태로 도착한다. 대기하는 줄이 길다면 다음 차를 타더라도 거의 대부분 앉아서 갈 수 있다. 전자책을 읽으며 가다 보면, 눈 전체가 마취된 것 감각이 없어지고,  힘이 풀리기 시작한다. 그때는 버텨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이북 리더기를 가방에 넣고 눈을 감는다. 오늘 어땠나, 집에 가서 뭘 좀 먹을까 따위 생각할 틈도 없이 잠을 자기 시작한다. ‘당연히 잠이 오지. 오늘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났다고!’ 싶어서 그대로 둔다.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는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에너지 총량의 법칙에 따라 나는 그것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것과 나 개인적인 시간에 쓰는 에너지를 잘 분배하려고 하는데, 아침 굿모닝이나 출근길 독서 그리고 퇴근 후 어색한 카페 작업까지 하나하나 잘 아껴서 써야 한다. 그러다가 회식 과음  중요한 업무로 인해 이 분배가 한 번에 무너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다시 잡아가면서 현재 생각하는 길을 꼿꼿이 걸어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과연 이런 게 쓸모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쌓이면서 큰 산이 될 것이라 생각, 아니 확신하기에 계속 가고자 한다. 


그래, 하루하루가 모여서 인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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