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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Nov 07. 2022

열정 없어 그냥 하는 거지

불이 붙으려면 연료가 있어야 한다. 가스든 기름이든 나무든 재료가 있어야 불이 붙고, 계속 넣어줘야 유지가 된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려면 그리고 꾸준히 지속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뭘까. 이런 순서가 아닐까 싶다. 우선 동기가 연료 역할을 해서 불을 지펴준다. 그런데 동기나 계기가 계속 투입될 수는 없지. 그다음부터 이것을 유지하는 것은 루틴이나 습관이다. 열정은 처음에만 왔다가 그냥 가는 거고, 다음 타자는 심심한 루틴이 아닐까.


금연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니코틴은 중독성 물질이라 끊기 위해서는 강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 자식이 생겼다고 치자. 내 아이가 생기다니, 놀랍고 감동적이다. 담배를 끊어야겠다. 세상의 나쁜 것은 그 무엇 하나도 나의 아이에게 노출되지 않게 하리라. 동기가 의지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조금 지나고 나면 감동도 경이로움도 희미해 진다. 아이는 내 눈앞에 존재하는 현실이 된다. 다시 몰래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 약하다. 불타는 열정은 금방 식어 버린다. 실천의 불씨를 뜨겁고 강하게 당겨줄 수 있으나, 지속하기 위해서는 다른 스킬이 필요하다. 바로 습관화이다. 처음부터 담배가 없었던 것 마냥 담배를 피웠던 시간마다 다른 것을 배치한다. 비타민을 먹는다거나 푸시업을 한다거나. 행동 패턴을 바꾸고 힘들어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즉, 담배의 습관을 다른 것으로 바꿔버리는 거다.


글쓰기로 해볼까.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었다. 멋있다. 나도 이런 소설을 써보고 싶다. 그래 나도 아련한 사랑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 쓰자. 써야 한다. 세상에 내 이야기를 알리지 않는 것은 국가, 아니 전 지구적인 손해다. 글쓰기를 위한 노트북을 샀다. 유튜브로 ‘글쓰기 잘하는 법’을 검색해 본다. 생각보다 쉽게 작가가 될 것 같다. 내 작품은 잔잔한 일본풍 취향이라 일본어 버전도 만들고 싶은데 그건 출판사가 알아서 해줄 테지. 블로그에 길게 한편 써서 올렸다. 어라? 그런데 반응이 없다. 음, 혹시 누가 베낄까 싶어서 중요한 내용을 조금 빼고 올려서 그런가. 다시 올려 본다. 여전히 인기가 없다. 슬슬 재미가 없어진다. 노트북은 맥주 마시며 넷플릭스를 볼 때 사용하게 된다. 블로그는 다시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하루키 소설을 읽고 불이 붙었다면 그다음은 그저 쓰는 거다. 훈련이라 생각하고 나도 그 정도 레벨까지 올리려면 한 2,000편 정도는 글을 써야 한다고 마음먹고 매일 쓴다. 글쓰기 루틴을 만들기 위해 시간표를 조정하고 노트북을 켜는 행동이 당연한 것이 되도록 계획을 짠다. 그렇게 계속, 유지한다.


열정 좋지. 마음을 먹고 준비해서 시작하기까지 제 역할을 다하는 녀석이지. 그런데 열정만으로 끝까지 도달할 순 없다. 바통을 루틴과 습관에서 넘겨주고 장렬히 사라지면 된다. 또 필요하면 부를게. 고생했어.


나? 지금 열정 없어. 그냥 하는 거야. 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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