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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May 27. 2023

개인이냐 분인이냐

최근에 재밌는 개념을 하나 알았다.


‘분인’이라는 건데, 우리 각자는 개인이 아니라 분인 이라는 것이다.


그게 뭔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개인을 영어로 하면 ‘individual’인데 ‘dividual(분리)‘ 앞에 부정의 의미인 ‘in’이 붙어서 ‘분리할 수 없는 객체’라고 쓰인다.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고유의 객체. 개인.


그런데 어느 작가는 ‘진정한 나’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개인이 아니라 충분히 나눌 수 있는 분인이라고 주장한다.


여러 개의 내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게 전부 다 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원래의 나’ 따위는 없다는 것인데 만나는 사람에 따라 내가 여러 개 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로 든 것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학교 폭력을 당한 사람은 자신의 무력함에 빠져 스스로 자책한다. 그런데 그건 오직 가해자 앞에서의 내 분인이 그런 것이고 다른 공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또 다른 내 분인이 활동한다는 것. 충분히 다른 모습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어서 공감이 되었다.


대학생 때 호감이 있었던 선배가 있었는데 만날 수 있는 연결 고리가 없어서 휴대폰으로 메시지라도 한번 보내 볼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이 너무 많아졌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남자친구가 있는 건 아닐까, 지금 수업 중인 건 아닐까, 싫다고 하면 부끄러워서 이제 어쩌나 등등 그래서 한 번도 먼저 연락을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술에 취하니까 뭐, 별로 고민도 하지 않고 메시지를 보내게 되더라.


그동안 왜 고민했지 싶을 정도로 결과도 좋았다. 비슷한 경험을 몇 번 하고 나서 문득 아침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술에 취하고 안 취하고 그 차이를 나는 알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그냥 똑같은 나일 텐데, 그러면 취했을 때와 같이 용기 있게 평소에도 하면 되겠네’


그다음부터는 어떤 일에 용기가 생기지 않을 때는 ‘만약 내가 술에 취했으면 이걸 했을까?’를 생각해 보고 그렇다는 결론이 서면 그냥 해버린다.


소심한 나와 용감한 나를 다 인정한 것이다. 그게 분인이라는 개념과 비슷한 것 같은데 나는 원래 소심한 사람인데 술을 마시면 잠깐 용감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는 소심한 나와 용감한 내가 모두 있는 사람이고 소심한 분인이 있어야 할 자리에 용감한 분인을 데려오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나는 원래 이런 사람’라는 정의를 가지면 그 틀에 나를 가두게 된다. 정작 나라는 사람은 만나는 이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이 나오는데 그건 그냥 가면을 쓴 나로 치부해 버리고 자꾸 나를 그 원래의 그 모습으로 되돌린다.


그렇게 되면 문제는 변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 발전하는 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틀에서 해방되어서 여러 가지 분인으로 이루어진 내 모습 중에서 가지고 싶거나 유지하고 있는 분인을 키워나가면 되는 것이다.


분인. 재밌는 아이디어 같다.


일본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에세이 ’나란 무엇인가‘를 읽고 오래간만에 좋은 영감을 얻었다.


아리가또 히라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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