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이득이 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음에 먹구름이 몰려와서 무엇을 해도 집중이 안 되고 짜증이 밀려올 때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이득이 된다.
꼬집어서 '이것 때문이야.'라고 말할 수 없지만 분명 기분이 상한 상황이고, 이미 나쁜 감정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해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것 같은 위태로운 기분일 때이다.
할 수 있으면 주변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해서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상황이나 사람에 대해 당장 반응하기 보다는 좀더 현명한 대처를 하고 싶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고 생각하다보니 즉각적인 반응을 하고 나중에 후회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나의 역린을 건드리거나 선을 넘었다고 말하기는 뭔가 애매하지만, 썩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이 연출되어 그 장면이나 상황을 계속 생각하게 될 때면 마음에 먹구름이 몰려온다.
그런 상황을 벌어지게 할 만큼 내가 허술했는지 생각하며 의기소침해지기도 하고, 상대의 무성의한 태도나 무신경한 반응에 화가 나서 부르르 성질이 올라오기도 하고, 이 나이 먹고도 그런 상황에 따끔하게 상대를 제압하지 못했다는 수치심이 스멀스멀 마음을 지배하는 그런 상황 말이다.
마음 먹고 상대와 논쟁을 해야 하는 때라면 아마도 나름의 합당한 근거를 준비하고 상대를 논리로 굴복 시키기 위한 전략을 마련했을텐데, 갑자기 당하는 일상의 불편함은 참 어렵다.
그 상황에 대한 기분 나쁨과 불편함은 느끼지만 마치 그냥 넘길 수 있는 상황을 내가 너무 소심하고 예민해서 불편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럴 때면 생각 버튼을 끄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이득이다.
기분 나쁜 우울감과 분노와 짜증을 그대로 인정하고 더이상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입을 열면 폭발하듯이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터져나와 내 말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으니 입을 잠그고, 더이상 그 일에 마음과 생각을 쓰는 에너지가 아깝다라는 선언을 한 후 잔다. 아니면 걷는다. 아니면 바느질을 한다. 아니면 악기 연습을 한다. 아니면 책을 읽는다. 아니면 음악을 듣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효과가 좋았던 이득은 '잔다'이다.
10분이건 30분이건 눈을 꼭 감고 자려고 해도 도저히 잠이 안 올 때면 우유를 한 잔 따뜻하게 데워서 마시고 다시 누워서 자려고 노력한다. 다른 취미들을 하다가 해소되기도 하지만 평소와 다른 집중도에 더 우울한 결과만 만들어 낼 수 있다.
자고 일어나도 불편한 상황이 해결되지 않아 여전히 찜찜함이 남아있지만 잠시 마음에 비가 내릴 시간을 둔 후 마주하면 먹구름의 정체가 조금은 확실해진다.
'아, 나는 그 상황에서 기분이 나빴구나.'
그래도 그 기분이 내 소중한 다른 것들을 방해하고 망가뜨리게 하지 않고 나는 그 상황을 잘 마주했구나하는 안도감이 들면 조금은 편안해진다. 그 후에 그 상황과 사람을 어떻게 할지 생각해도 늦지 않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서 살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적인 나는 마음에 먹구름이 몰려오면, 조용히 내게 말한다.
"이 기분이 내 소중한 것들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현명하게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