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낸 확실한 증거
"나에겐 꿈이 있어요. 모두를 사랑하지요"
1994년 8월 10일에 발매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3번째 앨범에 수록된 '아이들의 눈으로'라는 노래의 첫 소절이다. 어린이 보컬의 솔로로 시작하며, 담담하게 삶에 대한 관념을 풀어낸 곡이다. '발해를 꿈꾸며, 교실 이데아' 등의 메가 히트송과 함께 수록된 작품이다. 첫 소절의 시작이 신선하고 가사가 마음에 들어서 당시 함께 수록된 메가 히트송보다 나에게는 더 영향력 있는 노래가 되었다.
노래의 가사처럼 한 살 한 살 나이 먹어가면서 포근했던 어린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후회되는 많은 일이 생기기도 하고, 빨리 지나가버린 시간을 아쉬워하기도 하며 나이를 먹었다. 최근 나이 계산법이 '만 나이'로 바뀌면서 한국 사회에 독특하게 자리잡은 '빠른(01년 1월~2월 출생한 경우 00년 출생자와 초등학교 입학을 같이할 수 있음.2003년 생부터 폐지됨)'과 뒤섞여 매우 복잡해졌다.
개인적인 상황일 수 있지만 학교를 다닐 때나 사회 초년생일 때 나이에 대해 민감했고 막상 직장인이 되고 나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체감한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는 주로 업무와 과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이보다는 주로 근무 경력과 업무 능력으로 상대를 가늠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사회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할 때는 여전히 유효하게 '나이'가 상대와 나의 위치를 설정하는 가늠자가 된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어른스러워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와 만나는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와 나의 관계를 적절하게 가늠하여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나이가 들면서 그 나이에 맞는 행동 양식을 기대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무례하지 않으면서도 나와 상대가 편안할 수 있는 위치를 알고 있으면 유용하다. 오래 만나서 서로를 잘 알거나 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제외하고는 서로에 대한 매너를 지키기 위한 가늠자로 '나이'가 유용한 것 같다.
살아온 방식과 지나온 삶의 여정이 모두 다르기에 '나이'가 관계 설정의 가늠자 기능을 상실하고 정말로 단순한 숫자에 불과할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나이'를 알면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낸 세월과 향유한 문화를 짐작할 수 있어서 원활한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사람마다 신체적인 영역의 관리에 대한 노력과 방법이 다르기에 외면만 보고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함정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그 사람을 대할 때 하나의 에피소드가 될 수 있는 지점이다.
나이가 들면서 자꾸 쇠약해지는 육신과 사라지는 열정에 비해 '어른스러움'은 갖추기 어렵다보니 아쉬움이 컸지만 지금은 안다. 나이 들수록 '어른스러움'을 갖추고자 하는 고군분투가 내 삶에 진정한 반짝임으로 자리 잡아 다른 사람이 따뜻하게 다가올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이는 내가 살아낸 시간에 대한 명징한 증거가 되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