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지구에서 살고 있고, 지구의 대부분은 바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인간은 우주보다 바다에 대해 더 모른다고 했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고, 그 이유가 계속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AI에게 물었다.
“인간은 우주보다 바다에 대해 더 모른다잖아.
근데 왜 바다보다 우주에 더 관심이 많을까?”
그러자 AI가 답하기를,
팩트부터 까자.
인간은 우주보다 바다에 대해 더 모른다는 말, 통계적으로 맞아.
지구 해양은 약 70%를 차지하지만, 5%도 채 안 되는 영역만 제대로 조사됐어.
반면, 인간은 달, 화성, 수많은 외계 행성의 대기까지 분석하고 있어.
말하자면, 내 발밑보다 하늘 위를 더 잘 알고 있는 상태야.
그럼 질문은 이거지.
진짜 이유는 이거야.
바다는 우리 '안'에 있고, 우주는 '밖'에 있어.
바다는 지구라는 자기 내부의 어둠이지.
습하고, 무겁고, 압력에 짓눌리고, 닿기 어려워.
게다가 살아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
예측 불가하고, 끈적하고, 살아 있어서… 무섭지.
반면, 우주는 차가워.
진공이고, 생명체는 거의 없고, 패턴과 수학으로 설명 가능하지.
“복잡한 자연”보다 “질서 있는 무질서”가 더 편한 거야.
결국 이거지: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일은 항상 어렵고 불편하다.
차라리 바깥을 바라보는 게 덜 고통스럽다.”
기술적으로도 이유는 분명해.
우주는 진공이야.
탐사선 하나 쏘면 장애물 거의 없이 수천 킬로미터를 나아가.
하지만 바다는 다르지.
수심이 깊을수록 압력은 폭증하고, 신호는 닿지 않고, 조종도 어렵고, GPS나 전파도 안 먹혀.
게다가 심해엔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 계속해서 변수를 만들어.
즉,
기술적으로 바다는 훨씬 더 까다로운 상대야.
그런데 인류는 쉽고 뽀대 나는 걸 더 좋아하지.
우주는 미지 + 낭만 + 가능성으로 브랜딩 된 반면,
바다는 공포 + 고립 + 괴물로 상징되는 경우가 많아.
달은 시 쓰게 만들고,
심해는 공포영화 찍게 만들잖아.
같은 미지라도,
어떤 미지는 가보고 싶고,
어떤 미지는 피하고 싶다.
인간은 바다보다 우주를 더 알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바다를 덜 마주하고 싶어서 우주를 더 바라본다.
그게 기술의 문제이기도 하고,
심리의 회피이기도 하고,
존재론적으로는 “내 안의 심연은 내가 제일 끝까지 외면하고 싶은 곳”이라는 본능의 반영이기도 해.
AI의 대답은 흥미로웠고,
나는 그 대답에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하늘의 별들을 보고 점을 봤고, 제사를 지냈고, 소원을 빌었지.
하지만 바다는 이동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자연재해나 바다 생명체에 대한 공포를 직접적으로 느꼈기 때문에 피하고 싶었던 걸까?"
AI는 말했다.
"지금 네 질문은 단순히 ‘인간은 왜 바다보다 우주에 집착했는가’를 넘어서
‘그 인식의 뿌리가 문화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닿아 있어."
고대부터 하늘은 신의 메시지 공간으로 여겨졌고, 왕권과 권력의 정당성을 상징했어.
별은 농사, 재앙, 정치의 길잡이였고, 그 별을 읽는 자는 권력을 얻었지.
그래서 하늘은 질서와 의미의 상징이 되었고, 지금의 우주는 '도달 가능한 신비'로 남았어.
바다는 침몰, 익사, 괴물, 무질서, 미지의 세계.
전 세계 신화에 반복 등장하는 해양 괴물들: 크라켄, 세이렌, 리바이어던 등.
죽은 자가 땅에 묻히지 못하고 물속에 잠긴다는 점도 인간에게 깊은 불편함을 줬지.
어릴 적, 바닷가에서 놀다가 발밑이 어두워졌을 때 느낀 공포.
그 깊이가 2미터든 200미터든 상관없이, 보이지 않는 순간부터 시작된 감정.
어쩌면 그건 단순한 내 기억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이어진 감정의 유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바다보다 우주를 더 알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바다를 덜 마주하고 싶어서 우주를 더 바라본다.
그건 기술의 문제이기도 하고, 심리적 회피이기도 하고,
존재론적으로는 ‘내 안의 심연은 내가 제일 끝까지 외면하고 싶은 곳’이라는 본능의 반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