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강의, 컨설팅, 실행이 빠진 자금 투입의 함정
나는 지금까지
교육비와 마케팅비로만 수천만 원을 썼다.
어느 날은 1200만 원짜리 컨설팅을,
어느 날은 300만 원짜리 강의를,
또 어느 날은 '이건 진짜'라며
광고비로 500만 원을 집행했다.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내가 돈을 이만큼 넣었으니까,
이 사람들은 나를 성공시켜 주겠지.'
나는 실행이 아니라 자금으로
내 시간을 앞당기려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까지의 어떤 실패보다 더 값비쌌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정말 정교하다.
당신이 뭘 보고, 뭘 눌렀고,
어느 주제에 망설였는지,
심지어 ‘몇 초’ 머물렀는지까지 계산해서
당신의 피드를 채워준다.
그래서,
'하루 2시간으로 월 천만 원!'
'당신도 가능합니다. 아무도 안 해서 그렇지.'
'딱 이것만 따라 하세요. 전부 알려드립니다.'
라는 영상들이 폭탄처럼 쏟아지기 시작한다.
나도 그랬다.
그땐,
내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그 미끼에 가장 잘 낚이는 조건이란 걸 몰랐다.
우리는 늘 계산하고, 효율을 따진다.
그래서 '나만 모르고 있는 비밀이 있다'는 메시지에 약하다.
이 ‘비밀’을 알면 인생이 달라질 것 같고,
그래서 오늘 밤 다시,
490,000원 결제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다음 날,
메모장과 노트북을 펴지만 손이 안 움직인다.
강의는 들었지만 실행은 없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만 빼고 다들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초조해진다.
그래서 다시 유튜브를 켠다.
이번엔 다른 사람이 나온다.
집은 더 넓고, 차는 더 비싸고, 말은 더 세련됐다.
그리고 또 결제한다.
이 루프를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 있었다.
나중에 깨닫고 보니,
많은 강의와 컨설팅의 핵심 내용은 딱 한 줄이었다.
'이건 직접 부딪히면서 해보셔야 감이 오실 거예요.'
모든 건 내 몫이었다.
'강사'는 언제나 '설명'만 하고,
'실행'은 언제나 ‘내가’ 해야 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돈을 낸다고 실행력이 딸려오는 건 아니란 걸.
지불은 지불이고, 실행은 또 다른 이야기다.
소셜미디어 시대에 정보는 남아돈다.
우리가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실행할 수 있는 에너지, 환경, 루틴, 그리고 태도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이만큼 썼으니까,
이젠 결과가 나와야 하지 않나?’
이 생각이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더 큰돈을 써야 할 것 같았고,
더 신박한 무언가를 배워야 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코칭’을 산 게 아니라,
불안에 대한 면죄부를 산 거였다.
결국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은행은 더 이상 대출을 해주지 않았다.
나의 신용은 바닥을 쳤고,
그제야 나는 '실행 없는 지식'이
얼마나 무가치했는지를 온몸으로 깨달았다.
사실 나는 게을렀다.
근데 그 게으름이,
‘합리적 선택’으로 포장되어 있었을 뿐이다.
빠르게 성공하는 방법,
단기간 안에 수익 내는 공식,
그럴싸한 마케팅 전략...
나는 ‘성공한 미래’를 상상하며,
오늘의 노력을 유예하고 있었다.
돈으로 시간과 노력을 살 수 있다고 믿은 채.
실행은 사는 게 아니다.
실행은, ‘축적’이고, ‘몸의 기억’이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내 손끝이 익지 않으면,
수백 번 들어도 입력되지 않는 정보일 뿐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실행이 빠진 결제는,
시간과 비용, 내 모든 자원을 갉아먹는 행위였다.
컨설턴트는 잘못이 없었다.
내가 잘못한 거였다.
실행은 내 몫이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어떤 강의를 고민하고 있다면,
이제 막 컨설팅 결제를 하려 한다면,
어떤 전자책을 사려한다면,
내 말을 한 번만 들어줬으면 한다.
지금 필요한 건 결제가 아니라,
오늘 5분의 실행이다.
상품 하나를 올려보든,
블로그 글을 하나 써보든,
노션을 켜고 콘텐츠를 기획하든,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도 그냥 해보자.
오늘 그 실행을 할 수 있는가?
아니면 또다시,
결제 버튼을 누르며 불안의 대가를 지불할 건가?
돈 없이도 성공할 수 있어야,
돈으로도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그 단순한 진실을,
수천만 원의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